| [참고] 백제:무령왕, 성왕 고구려:문자명왕, 안장왕, 안원왕 중국:남북조(南北朝) |
| 서기 514년, 법흥왕이 즉위하니, 이름은 원종(原宗)으며 지증왕의
맏아들이다. 왕은 키가 7척이나 되고, 성품이 너그러워 사람들을 사랑하였다.
4년(서기 517년) 4월에 처음으로 병부를 설치하였고, 다음해 2월에 주산성을 쌓았다. 9년(서기 522년) 3월에 가야국 왕이 사신을 보내어 혼인을 청하므로 왕은 이찬 비조부의 여동생을 보내 주었다. 15년(서기 528년)에 처음으로 불법을 널리 행하게 하였다. 이보다 앞서 눌지왕 때에 중 묵호자가 고구려에서 일선군(지금의 선산)으로 왔었는데, 그 고을에 사는 모례라는 사람이 집안에 골방을 마련하여 머물게 하였다. 때마침 양나라에서 사신을 보내어 의복과 향을 선물했다. 신하들은 향의 이름도 모르고 사용법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사람을 시켜 향을 가지고 나라 안 곳곳을 돌아다니며 물어 보았다. 묵호자가 이것을 보고 그 이름을 알려 주며 말하기를,
하였다.
하고, 작별을 고하더니 잠깐 사이에 어디로 사라졌다. 그가 간 곳은 끝내 아무도 알수 없었다. |
| 그 후 비처왕(소지왕) 때에는 아도라는
중이 시중하는 사람 세 명과 함께 다시 일선군 모례의 집을 찾아왔는데 겉모습이
묵호자와 비슷하였다. 그는 몇 해동안 이곳 저곳 돌아다니며 살다가 앓지도
않고 죽었다. 그를 시중하던 세 사람이 그대로 머물러 살면서 불경을 가르치니,
날이 갈수록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다.
그리하여 법흥왕도 불교를 믿고 널리 펴 보려고 했다. 그러나 신하들이 믿지
않고 여러 가지로 말이 많아 어찌할 수 없었다. 이 때 가까이 있던 신하 이차돈(異次頓)이
왕에게 아뢰기를,
하였다. 그러자 법흥왕은, "내가 본래 불도를 일으키고자 함이거늘 죄 없는 신하를 어찌 죽인단 말인가?" 하고 거절하였다. 이차돈은 다시, "만약에 불도를 일으켜 행할 수만 있다면 신은 비록 죽더라도 유감이 없겠나이다." 하고 굳은 결의를 보였다. 그래서 왕은 다시 신하들을 부러놓고, 불법을
널리 알려 믿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다. 모든 신하들이 대답하기를,
하고 반대하였다. 이 때 이차돈이 홀로 말하기를,
하고 불법을 믿도록 강력히 주장하였다. 이차돈의 말을 들은 왕은,
하고 형리에게 명하여 목을 베라 하였다.
하고 말하였다.
그리고 그 나라 땅을 그의 식읍(고을의 땅을 개인에게 주어 거기에서 나오는
산물을 조세로 거둬 가지게 하던 때의 그 고을을 일컫는 말)으로 주었다. 또한
그의 아들 무력은 조정에 벼슬하여 각간에까지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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