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LA 다저스 박찬호가 FA를 앞두고 있지 않았다면 허리가 아픈데도 마운드에 섰을까. 올 시즌에 오로지 팀을 위해 던졌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FA가큰 작용을 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박찬호는 지난 10일(한국시간) 시즌을 결산하는 인터뷰에서 “주위에서는 FA때문에 투구를 강행했다고 믿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며 이 부분에 이의를 제기했다. 그러면서 “지난 99년 에이전트 스콧 보라스와 손을 잡은 후 교육받은 게 있다. 시즌 전 경기에 등판하는 것이다. 승패는 내가 컨트롤할 수 없지만 등판은 의지대로 할 수 있다. 올해 아프더라도 끝까지 해보겠다는 자세로 마운드에 섰다”고 주장했다. 
 
 
 
박찬호가 올해 처음 허리를 삐끗한 것은 5월 3일 신시내티전에서 불펜 피칭할 때였다. 이어 5일 시카고 커브스전 7회 무사 1·2루에서 론델 화이트에게 볼을 던진 뒤 갑자기 통증을 호소해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이때부터 팬들의 관심이 박찬호의 허리에 쏠렸다. 다저스 구장을 찾은 한인동포나 시청자들은 경기 도중 박찬호가 마운드에서 빙빙 돌면 ‘허리에 이상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걱정할 정도였다. 

박찬호도 6월에 허리가 끊어지게 아팠고, 8월 20일 뉴욕 메츠전을 앞두고는 등판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실토했다. 그러나 허리통증을 무릅쓰고 선발 35경기에 등판해 이 부문 메이저리그 선두를 지키는 투혼을 발휘했다. 무서운 정신력으로 등판을 거르지 않은 점을 높이 평가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칭스태프는 박찬호의 투지가 부족하다고 비난을 퍼부었다. 

박찬호는 결산 인터뷰 때 테리 애덤스와 관련한 얘기를 했다. 당시 구단에선 불펜에서 선발로 보직을 바꾼 애덤스가 긴 투구이닝을 던져 시즌 마지막 등판을 건너뛰게 됐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박찬호는 “애덤스가 오른쪽 팔꿈치 통증으로 마지막 게임에 등판하지 못한 것”이라며 사실을 알려줬다. 

애덤스는 샌프란시스코전에도 동행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애덤스가 통증을 속이고 등판한 것은 FA 때문이냐고 묻자 “그럴 수도 있겠다”고 답했다. 애덤스의 올 연봉은 260만달러이며 시즌 막바지 호투로 몸값이 1000만달러 대까지 치솟았다. 그까짓 팔꿈치 통증이 대수인가. 조금만 참으면 돈방석에 앉는데 이를 외부에 드러낼 우둔한 선수는 없다. 

선수, 특히 투수는 FA를 앞두고 온 힘을 다한다. 시쳇말로 ‘젖먹던 힘’까지 동원한다. 올 시즌 박찬호 게임은 한마디로 수백억원이 걸린 경기였다. 본인도 이 점에 대해 가타부타 말이 없지만 부인할 수 없는 대목이다. 

박찬호의 동료 대런 드라이포트를 보면 FA의 정답이 나온다. 드라이포트의 지난해 성적은 12승9패 방어율 4.16이었다. 전반기에 4승7패 5.14로 부진했는데 후반기엔 8승2패 3.14로 좋은 성적을 냈다. 다저스는 후반기 성적만을 보고 5년 5500만달러를 덜컥 손에 쥐어줬다. 그런데 드라이포트는 다년 계약한 뒤팔꿈치 통증을 호소하며 벌렁 자빠져 버렸다. 

사실 다저스로서는 드라이포트가 후반기에 반짝 성적을 올리지 않았다면 그를 포기하고 일찌감치 박찬호와 다년계약을 추진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번의 판단착오로 다저스는 ‘게’도 ‘구럭’도 다 놓치게 됐다. 드라이포트는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했고, 박찬호는 FA로 빼앗길 위기에 처했다. 

아파도 참고 던져야 하는 게 바로 FA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