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배기유머 > 고사성어 > 고구려 > 19대 광개토대왕(廣開土大王)
 
[참고] 신라:내물, 실성 백제:진사왕, 아신왕, 전지왕 중국:5호16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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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391년, 광개토왕이 즉위하였다. 고국양왕의 아들로 이름은 담덕(談德) 이다. 연호를 영락(永樂)이라 하였다. 왕은 생김이 웅장하고 점잖으며 큰뜻을 품고 있었다. 
 
원년(서기 391년) 7월에 왕은 남쪽으로 백제를 쳐서 10성을 빼앗았다. 9월에 북으로 거란(契丹)을 정벌하여 남녀 5백 명을 사로잡고, 본국에서 흩어진 백성 1만 명을 타일러 데리고 돌아왔다. 

10월에 다시 백제의 관미성(關彌城)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관미성은 사방이 바다에 에워싸인 채 우뚝 솟아 있는 천연의 요새였다. 왕은 군사를 일곱 군데로 나누어 공격케 하여 20일 만에야 성을 빼앗았다. 
 
2년(서기 392년) 평양에 9사를 창건하였다. 
 
4년(서기 394년) 7월에 백제군이 쳐들어와 왕은 날랜 군사 5천명을 거느리고 싸워 물리쳤다. 

8월 백제와 패수(浿水) 가에서 싸워 격파하고 8천을 포로로 잡았다. 왕은 비려(碑麗)가 고구려인을 돌려 주지 않기 때문에 몸소 토벌에 나섰다. 부산(富山)을 넘어 산을 등에 지고 염수(鹽水)에 이르러 비려의 3부락 6∼7백 령(營)을 파하고 소, 말, 양떼를 가지고 돌아왔다. 
 
5년(서기 395년) 8월에 왕은 패수에서 백제군을 크게 무너뜨리고, 적 8천여 명을 사로잡았다. 
 
6년(서기 396년) 왕이 친히 백제를 토벌하여 여러성을 치고 백제 왕성을 점령하였으나, 백제왕은 탈출하여 항복하지 않고 끝까지 싸우려 하였다. 왕이 진노하여 아리수(阿利水)를 건너고, 장수를 보내어 백제 임시수도인 성횡(城橫) -혹은 악성(岳城)-을 핍박하니 마침내 백제왕이 항복하고 영원히 변방의 신하가 될 것을 맹세하였다. 
 
8년(서기 398년) 원수를 보내어 숙신(肅愼)의 터전을 돌아보게 하였는데, 가태라곡(加太羅谷) 남녀 삼백명의 포로를 얻어 돌아왔으며 이때부터 숙신 (여진족)도 조공하고 고구려를 섬겼다. 
 
9년(서기 399년) 연왕 모용성(慕容盛)이 3만으로 침입하여 신성(新城), 남소(南蘇) 두성을 취하였다. 백제가 서약을 배반하고 왜적과 사통하여 신라(新羅)를 공격하니 신라왕이 사자를 보내 구원을 청하였다. 
 
10년(서기 400년) 왕께서 보기병 오만 병사를 보내어 신라를 구원토록 하였는데 종남거성(從男居城)을 지나 신라도읍에 이르러 왜적을 패퇴시켰다. 도망가는 왜구를 따라서 급히 추격하여 임나가라(任那加羅)의 발성(拔城)까지 쫓아가니 임나가라는 항복하였다. 이후 고구려 본토 출신 안라인(安羅人) 사람으로 지키게 하고 돌아왔다. 

2월에 중국 북방의 연나라 왕이 3만 명을 이끌고 쳐들어왔다. 연나라 장수 모용 희가 선봉에 서서 신성, 남소 두 성을 함락시켰다. 적군은 7백여 리의 땅을 개척하여 민가 5천여 호를 옮겨 놓고 돌아갔다. 
 
11년(서기 401년) 황이 군사를 보내어 숙군성(宿軍城)을 공격하자 연의 모용귀(慕容歸)가 도망했다. 

12년(서기 402년)에 왕이 군사를 보내어 연나라의 숙군성을 치게 하니, 연나라의 평주 자사 모용 귀가 성을 버리고 달아났다. 
 
14년(서기 404년)에 다시 왕은 군사를 일으키어 연나라를 침공하였다. 
 
15년(서기 405년) 정월에 연나라 왕 모용 희가 요동성을 공격하였다. 성이 함락될 위기에 있을 때 모용희는, 
 
"먼저 성위에 올라가지 말라. 그성을 깎아 내려 평지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나와 황후가 수레를 타고 들어가리라." 

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성에서 방비를 더욱 튼튼히 했으므로 적은 이기지 못하고 돌아갔다. 
 
16년(서기 406년)12월에 모용희가 다시 요동의 목저성을 공격하였으나, 이기지 못하고 돌아갔다. 
 
17년(서기 407년) 3월 북연에 사신을 보내어 종족의 은의를 배풀자 북연왕(北燕王) 고운(高雲)은 시어사(侍御史) 이발(李拔)을 보내어 보답했다. 
 
18년(서기 408년) 왕자 거련(巨連)을 태자에 봉하고 7월 동쪽지방에 독산성(禿山城)등 6성을 축조하고 평양 민가를 옮겼다. 
 
23년(서기 413년) 10월에 왕이 세상을 떠나니, 호를 광개토왕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