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배기유머 > 고사성어 > 신라 > 17대 내물이사금(奈勿尼師今)
 
[참고] 백제:근초고왕, 근구수왕, 침류왕, 진사왕, 아신왕  
고구려:고국원왕, 소수림왕, 고국양왕, 광개토대왕 중국:5호16국

서기 356년 나밀(那密)이라고도 하는 내물왕이 즉위하니 그는 성이 김씨, 구도 갈문왕의 손자이며 아버지는 각간 말구(末仇)이다. 홀해왕이 돌아가고 아들이 없으므로 내물왕이 그 뒤를 잇게 되었다. 
 
2년(서기 357년) 봄에 왕이 신하들을 곳곳에 보내어 홀아비와 홀어미, 부모 없는 아이들, 아들 없는 넑은이들을 위로하고 곡식을 나누어 주게 하였다. 또한 형제간에 우애가 두텁고 효심이 뛰어난 사람에게는 벼슬을 주었다. 
 
9년(서기 364년) 4월에 왜병이 크게 쳐들어왔다. 왕이 이를 듣고 왜병을 이기지 못할 것 같아 풀로 수천 명의 사람들을 만들어 옷을 압히고 무기를 달아 토함산 밑에 벌여 세웠다. 그리고 용사 1천여 명을 숨겨 두었다. 왜병들은 그들의 수가 많음을 믿고 진격하여 왔다. 그러나 숨어 있던 군사가 뛰쳐나가 적을 치니 왜병이 크게 피해서 달아났다. 신라군이 계속 왜병을 추격하여 거의 다 죽였다. 
 
13년(서기 368년) 봄에 백제가 사신을 보내어 좋은 말 두필을 바쳤다. 
 
18년(서기 373년) 백제의 독산성 성주(禿山城主)가 무리 3백 명을 이끌고 항복하여 찾아왔다. 왕은 이들을 받아들여 6부에 나누어 살게 하였다. 

백제 왕이 편지를 보내어 말하기를, 
 
"두 나라가 화합하여 형제가 되기를 약속하였는데, 지금 대왕께서는 우리 나라를 배반한 백성들을 받아들이시니, 이것은 두 나라가 친하게 지내는 일이 아닙니다. 내가 평소 대왕께 바라는 것도 아닙니다. 원하건대 그들을 다시 백제로 돌려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하였다. 
 
내물왕은 이렇게 답을 했다. 

"백성들의 마음은 한가지입니다. 생각이 나면 오고 맘이 없으면 가 버리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대왕께서는 백성들이 불안하게 사는 것은 걱정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나를 나무라니 이것은 옳은 일이 아닙니다." 
 
백제 왕이 이 말을 듣고 다시는 말을 꺼내지 아니하였다. 
 
33년(서기 388년) 4월에 도성에 지진이 있었다. 6월에도 지진이 있었으며, 겨울에도 얼음이 얼지 아니하였다. 
 
37년(서기 392년)정월에 고구려의 광개토왕이 사신을 보내었다. 왕은 이때 고구려의 세력이 큼을 알고 이찬 벼슬에 있던 대서지(大西知)의 아들 실성 (實聖)을 보내어 볼모로 삼게 하였다. 
 
38년(서기 393년) 5월, 왜인이 5일간 왕성(금성)을 에워쌌다. 장군과 병사들이 나가 싸우기를 원했지만, 
 
"지금 적이 배를 버리고 깊이 들어와 죽을 곳에 와 있으니 그들의 강함을 이기기 힘들다." 
 
하고, 왕이 허락하지 않았다. 
 
신라군이 성문을 굳게 닫고 지키자 적은 마침내 그냥 물러갔다. 왕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날쌘 기병 2백여명을 보내어 적의 앞길을 막고, 동시에 보병 1천여 명을 보내어 독산 (지금의 연일군 신광면)에서 적을 에워싸고 무찌르니, 적군이 크게 패하고 죽은 자가 매우 많았다. 
 
40년(서기 395년) 말갈이 북변을 침공하니 실직(悉直) 벌판에서 무찔렀다. 
 
46년(서기 401년) 봄과 여름에 가뭄이 있었다. 7월에는 고구려에 볼모로 가 있던 실성이 돌아왔다. 
 
47년(서기 402년)2월, 왕이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