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배기유머 > 고사성어 > 고구려 > 20대 장수왕(長壽王)
 
[참고] 신라:실성, 눌지, 자비, 소지 백제:전지왕, 구이신왕, 비유왕, 개로왕,문주왕, 삼근왕, 동성왕 중국:5호16국, 남북조(南北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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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413년, 장수왕이 즉위하였다. 이름은 거련(巨連)이며 광개토왕의 맏아들이다. 연호를 건흥(建興)이라 하였다. 
 
2년(서기 414년) 광개토왕비 세움. 장군총(將軍塚) 축성.
 
15년(서기 427년) 도읍을 평양(平壤)성으로 옮겼다. 안학궁(安鶴宮) 건립.
 
23년(서기 435년) 북연(燕)나라는 위(魏)나라의 잦은 침입으로 날로 국력이 기울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북연 왕 풍홍이 몰래 고구려에 사신을 보내어 만약 일이 급하게 되면 고구려에 머물게 해달라고 도움을 청하였다. 

24년(서기 436년) 위나라의 침공으로 북연이 위험에 빠지자, 고구려 왕은 장수 갈로(葛盧)와 맹광(孟光)에게 수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연나라의 사자를 따라가게 하였다. 

연(燕)나라에 도착한 갈로(葛盧)와 맹광(孟光)은 고구려 군사의 낡은 군복을 벗게하고 연나라 무기고에서 새 옷과 병기를 꺼내어 무장시켰다. 그리고 성중의 값진 물건을 모두 거두었다. 

5월이 되자, 북연 왕은 성중의 백성과 남은 군사를 이끌고 고구려를 향해 떠났다. 위나라에서는 북연 왕 풍홍을 잡아 보내라 하였지만, 왕은 말을 듣지 않았다. 

26년(서기 438년) 2월, 북연 왕이 요동에 이르렀다.고구려 왕은 사람을 보내어, 들에서 먹고 자고 있으니 얼마나 피로하고 괴롭겠느냐고 위로하였다. 그러자 북연 왕 풍홍은 불쾌히 여겨 꾸짖었다. 왕은 풍홍을 성 밖에 머물게 했다가 다시 북풍 지역으로 옮기게 하였다. 북연의 풍홍이 고구려를 업신여기자 왕은 풍홍의 시중드는 사람들을 빼았고, 태자 왕인을 인질로 잡았다. 

풍홍은 이를 분하게 여겨 사신을 송나라로 보내고 옮겨 갈 채비를 하였다. 그러나 풍홍이 송나라로 가는 걸 싫어한 왕은 장수 손수와 고구 등을 보내어 풍홍과 그의 자손 10여 명을 죽였다. 

그러자 송나라 사신 왕 백구는 그들이 거느리고 온 7천여 명의 군사와 함께 고구려 진영을 기습하여 고구를 죽이고 손수를 사로잡았다. 왕은 백구 등이 함부로 사람을 죽였다 하여 군사를 시켜 그를 잡아다가 송나라로 보냈다. 

28년(서기 440년) 신라가 고구려 변방을 습격하였다. 왕이 노하여 군사를 일으켜 치려 하자, 신라 눌지왕(訥祗王)이 사신을 보내어 사죄하므로 그만 두었다. 
 
39년(서기 451년) 연호를 연수(延壽)라 하였다. 
 
56년(서기 468년) 말갈 군사 1만을 내어 신라국 실직주성(悉直州城)을 취하였다. 
 
60년(서기 472년) 연호를 연가(延嘉)라 하였다. 
 
63년(서기 475년) 9월 왕이 군사 3만을 이끌고 백제를 쳐서 수도인 한성 (漢城)을 함락하였다. 이 때 백제의 부여경(夫餘慶 개로왕)을 죽이고, 남녀 8천여 명을 사로잡아 왔다. 
 
67년(서기 479년) 유연과 더불어 지두우를 공략하고, 나아가 거란(契丹)도 정복하였다. 
 
77년(서기 489년) 9월, 군사를 파견하여 신라의 북쪽 변경에 있는 호산성을 함락하였다. 

79년(서기 491년) 12월에 왕이 돌아가니 나이가 98세였다. 시호를 장수왕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