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배기유머 > 고사성어 > 중국역사 > 삼국시대(三國時代 220~28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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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말 황건적의 난을 계기로 각지에서 군웅이 할거하였는데 이들 할거 세력 들은 동탁의 난을 계기로 그들의 세력 확장에 힘을 기울이게 되었다. 
 
이 가운데서 천하를 삼분하여 나라를 세운 촉한(蜀漢). 위(魏). 오(吳)를 삼국이라한다. 
 
 
이 삼국 가운데 중원 지역에서 기선을 제압한 것은 위의 조조였다. 조조는 당대 일류의 전락가로 전투시에는 항시 진두에 서서 장병들을 직접 지휘하였다. 그는 장안에서 도망해 온 후한의 마지막 황제 헌제를 맞아들여 천자의 명을 빙자하여 군웅들을 호령하였다. 당대 최고의 명문 출신 원소를 관도의 대전에서 격파함 으로써 중원 통일의 기초를 구축하였다. 
 
그 후 승상이 되어 권세를 휘둘렀고 208년 천하 통일의 대업을 완성하기 위하여 대군을 강동으로 출동시켜 손권(孫權), 유비(劉備)의 연합군과 적벽에서 일대 결전을 벌였으나 이 전투에서 대패함으로써 조조의 천하 통일의 꿈은 깨어지고 대신 삼국이 정립되는 형세로 바뀌었다. 
 
촉한의 유비(劉備)는 제갈공명을 삼고의 예로써 맞아들이고 오나라 손권과 연합하여 적벽에서 조조의 80만 대군을 격파함으로써 서서히 기반을 구축해 간다. 
 
유비(劉備)가 죽은 후 제갈공명(諸葛孔明)은 후주 유선을 도와 중원회복을 목표로 전후 두 차례에 걸쳐 애국 충정이 넘치는 출사표(出師表)를 올리고 6차에 걸쳐 조조의 뒤를 이은 조비의 위나라를 공격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오장원의 진중에서 일생을 마쳤다. 
 
또한 오(吳)나라의 손권(孫權)은 그의 형 손책이 죽은 후 가업을 이어 강동에서 오나라를 세워 산월족을 귀순시키고 강동의 미개발 지역을 개발하여 그의 세력을 확대해 나갔다. 
 
형주의 영유권 문제로 형주를 지키던 관우(운장)을 맥성에서 생포하여 죽임으로써 유비와 일전을 벌이게 된다. 결국 유비는 이 싸움에서 패하고 이것이 원인이 되어 병이 들어 일생을 마치게 된다. 
 
이들 삼국은 반세기 동안 역사에 가가 그들의 발자취를 남겼고 마침내는 오장원에서 제갈공명과 오랫동안 대치했던 위나라 대장군 사마의의 손자 사마염이 세운 서진에 의해 멸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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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처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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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단 평 月 旦 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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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두연두기 煮豆燃 
차재두량 車載斗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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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종칠금 七縱七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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