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고] 신라:유리, 탈해, 파사, 지마, 일성 백제:다루왕, 기루왕, 개루왕 중국:후한(後漢) |
| 서기 53년 태조대왕(국조왕이라고 함)이 즉위하니, 이름은 궁(宮)이라 하고,
어릴 때 이름은 어수라 하였다. 왕은 유리명제(琉璃帝)의
아들인 고추가 (古鄒加 벼슬이름) 재사(再思)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부여사람이다.
모본왕이 돌아간 후 태자가 어리고 똑똑하지 못하여 나라를 다스릴수 없겠으므로 나라 사람들이 궁을 맞이하여 왕으로 세운 것이다. 왕은 나면서부터 눈을 뜨고 볼줄 알았고, 어려서도 나이보다 숙성하였다.
왕으로 죽위할때 나이가 7세였으므로 왕의 어머니가 대신하여 나라일을 맡아
보았다. 연호를 융무(隆武)라 하였다.
46년(서기 98년) 왕은 동쪽의 책성(柵城)에 행차하였다. 53년(서기 105년) 왕이 군사를 보내어 요동(遼東)에 쳐들어 가 6현을 탈취하였
으나 요동태수 경기에게 결국 패하였다.
69년(서기121년) 봄에 한나라 유주 자사 풍환, 현도 태수 요광, 요동태수 채풍등이 군사를 거느리고 침입하여, 예맥의 장수를 죽이고 병사와 말과 재물을 모두 빼앗아 갔다. 왕은 아우 수성에게 군사 2천여명을 이끌고 풍환, 요광 등을 맞아 싸우게 하였다. 수성은 먼저 한나라 진영에 사람을 보내어 거짓으로 항복하니 그들이 믿었다. 그러자 수성은 험한 곳에 군사를 숨기고 한나라 군사를 막으면서 몰래 군사
3천명을 보내어 현도와 요동을 공격케 하였다. 군사들은 성곽을 불지르고 2천여
명을 죽이거나 포로로 하였다.
마땅히 충성과 의리를 지켜야 하며 예의와 양보로 개인적인 욕심을 버리고, 위로는 왕의 덕을 베풀고 아래로는 백성의 마음을 얻어야만 오래도록 부귀를 누릴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형님께서는 이런 생각은 하지도 않고 그저 놀기만 하면서 어려움을
피하려고만 하니, 형님을 위해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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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4년(서기 146년) 7월, 왜산아래에서 사냥을 하던 수성이 부하들에게 말하기를,
"대왕이 늙어도 돌아가시지 않고 나 역시 속절없이 늙어가고 있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 너희들은 나를 위해, 내가 왕이 되도록 힘써 주겠느냐?" 하였다. "명령대로 하겠습니다." 모든 부하들이 함께 대답했다. 그라나 오직 한 사람만이 반대하여, "좀전에 왕제께서 옳지 못한 말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부하들이 모두 바른말로 반대하지 않고 명령만 따르겠다고 하니, 이것은 간사하고 아첨하는 말입니다. 저는 바른말을 하고 싶습니다. 왕제의 뜻은 어떠합니다?" 라고 하였다. "그대가 바른말을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좋은 약이 되지 않겠느냐? 망설이지 말고 말하라." "지금 대왕께서는 나라를 잘 다스려 안팎으로 나쁜 마음을 품는 자가 없습니다. 왕제께서 비록 큰 공을 세우셨다 하지만 간사한 부하들을 데리고 밝은 임금을 쫓아내려 하시니, 이것은 한 가닥 실로 큰 바위를 매어 끌어 당기시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그것이 불가능 하다는 걸 알 것입니다. 만일
왕제께서 나쁜 마음을 버리고 어진 마음으로 계속 대왕을 섬기신다면, 대왕께서도
왕제의 착한 마음을 아시고 왕위를 물려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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