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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西周 기원전 1100~770년경) 

기원전 12세기에서 기원전 249년까지 은(殷)나라에 이어 성립된 중국의 고대 왕조. 

중국의 역사시대 최초의 왕조인 은(殷)을 멸망시키고 새로이 그 시조 무왕 (武王)에 의해 창건되었다. 주는 본래 섬서성(陝西省) 기산(岐山) 부근을 본거지로 한 후진민족이었다. 은나라의 선진문화를 받아들이고 국력이 증대된 주는 점차로 주변민족을 점령하여 서부지방의 강국으로 부상하였다. 강태공 (태공망

그 후 문왕(文王)은 황하를 따라 동진하여 화북 대평원 부근으로 진출하였으며 그의 아들 무왕(武王)이 그 뜻을 이어 받아 황하를 건너 맹진(孟津)으로 도하하고, 북상하여 목야(牧野)에서 은나라 폭군 주왕(紂王)의 대군을 무찌르고 은왕조를 멸망시켰다. 

주(周)는 은(殷)의 말기에 처음 시작된 봉건제도를 본격적으로 발전시킨 국가로서 봉건제에 의해 혈연관계가 없는 부족까지도 주의 친척으로 보는 유사혈연제를 만들어 제후로 봉하고 유사시 무력을 동원하도록 하여 강력한 무력국가를 만들어 약 300여년 동안 번창하였으나 기원전 770년경 견융의 침입으로 동쪽으로 쫓겨나 하남성 낙양 부근의 성주(成周)에 도읍하였다. 

이에 따라 성주로 천도하기 전을 서주(西周: 기원전 1100년 ~770년)라 부르고, 그 후를 동주(東周: 기원전 770년 ~256년)라 하는데 동주시대의 주왕조는 그 힘을 잃어 거의 정치적 실권이 없이 명목상의 왕조로 존재하였다. 기원전 256년 진(秦)에 의해 멸망하기까지 25명의 제왕이 514년간 동주왕조를 이끌었다. 동주시대는 곧 춘추전국시대에 해당한다. 

춘추시대 [春秋時代 기원전 770년 ~ 기원전 403(453년)년] 

주(周)나라 왕실이 호경(鎬景)에서 낙양(洛陽)으로 천도한 기원전 770년 부터 기원전 403년 무렵까지의 시대. 

춘추시대란 이름은 공자가 편찬한 [춘추(春秋)]로부터 유래되었다. 

기원전 403년은 진나라 대부(大夫)였던 한(韓), 위(魏), 조(趙)의 3경(三卿)이 주나라에서 위열왕(威烈王)에 의하여 제후(諸候)로 인정된 해를 뜻하나, 3경이 진(晋)나라를 실제로 3등분하여 독립한 해(기원전 453년)를 춘추시대와 전국시대의 경계로 보기도 한다. 

이 무렵부터 주나라 왕실을 대신해 천하를 호령하겠다는 군웅쟁패의 시대가 계속되면서 주나라 초기의 1천여 국가가 통합 병합을 거쳐 100여국으로 정비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나라는 진(秦), 조(趙), 진(晋), 제(齊), 초(楚), 노(魯), 위(魏), 연(燕), 조(曹), 송(宋), 진(陳), 채(蔡), 정(鄭), 오(吳), 월(越)의 15개국이다. 

이 시기에는 중국 주변 이민족들의 움직임도 활발해 지면서 이들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하여 제후 중의 유력자가 일어나 존왕양이(尊王攘夷 왕을 높이고 오랑캐를 무찌른다는 뜻)를 명분으로 제후간의 동맹을 주도하였다. 

이 동맹의 장을 패자(覇者)라 하였는데 춘추5패로는 제(齊)의 환공(桓公), 진(晋)의 문공(文公), 송(宋)의 양공(襄公), 진(秦)의 목공(穆公), 초(楚)의 장왕(莊王)을 꼽는다. 

한편 이 시대에는 여러 나라의 대립이 심화되어 서로 손을 잡거나 혹은 싸우면서 각각 그 힘을 키워나갔기 때문에 각 지역의 발전이 급속히 이루어졌으며, 문벌은 차츰 붕괴하기 시작하였다. 

전국시대(戰國時代 기원전 403년 ~ 221년) 

춘추시대를 이어 주(周)나라 왕조의 권위실추를 틈타 제후들 사이에 보다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약육강식의 시대. 

한, 위, 조 3진(三晋)이 주(周)나라 위열왕(威烈王)으로 부터 제후로 인정된 해로부터 진(秦) 시황제(始皇帝)가 중국을 통일한 때까지를 이른다. 

그러나 춘추시대를 기원전 453년, 3진의 실질적인 독립 시기까지로 보는 경우에는 이때부터 기원전 403년까지를 전국시대의 전기, 그 이후를 전국시대 후기로 나눈다. 

전국시대란 명칭은 전한(前漢) 시대의 유향(劉向)이 편찬한 [전국책(戰國策] 으로 부터 유래되었다. 이 시대에는 전국7웅(戰國七雄)인 연(燕), 제(齊), 한(韓), 위(魏), 조(趙), 초(楚), 진(秦)이 서로 세력을 다투었으며 말기에 이르면 진(秦), 제(齊), 초(楚) 3국의 쟁탈전으로 변모한다. 

그 이후 진시황(秦始皇) 정(政)이 나타나 이사(李斯) 등의 도움으로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를 이룩함으로써 전국시대는 종말을 고한다. 전국시대에는 철제 농기구와 쟁기의 보급, 관개시설의 발달 등에 의하여 농업생산이 향상되고 상공업도 발달하였다. 이러한 춘추전국시대의 나라들은 모두 주왕실의 제후들이었으나, 당시 정치가 문란 해서 주왕실의 위력이 제후들에게 미치지 못했다. 

이러한 혼란의 와중에 공자, 노자, 맹자 등 많은 사상가들이 출현했으며 제지백가(諸子百家)라는 학술 사상이 발달했다. 대표적인 유파로는 유가(儒家), 도가(道家), 묵가(墨家), 법가(法家), 음양가(陰陽家), 명가(名家), 종횡가 (縱橫家), 농가(農家), 병가(兵家), 소설가(小說家), 잡가(雜家) 등 10대가 있었다. 각 유파는 상호 논박하면서 사상적 발전을 이루었으므로 당시 학술 문화가 크게 발전하는 계기를 이루었다. 사용하고 있는 한자숙어(漢字熟語)의 대부분이 춘추전국시대에 만들어졌다고 할만큼 이 시대는 잦은 전쟁과 사회적인 혼란이 가중되는 시기였다. 
 

 
 
진(晋) 진경공, 예양, 지백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제후국 중의 하나로 성은 희(姬)라 하고 후작(侯爵)의 나라였다. 전설에 의하면 주(周) 무왕(武王)의 아들이며 성왕(成王)의 아우인 당숙우(唐叔虞)가 당시 융적(戎狄)의 유목지였던 분수유역(分水流域)의 당(唐) 에 봉후(封侯)되어 그의 아우 섭(燮) 때에 국호를 진(晋)으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기원전 770년 경, 주 왕실의 동천시대부터 서북제후 간에 두각을 나타내었으며, 헌공(獻公 기원전 676~651)때에 이르러서는 도읍을 강(絳)으로 옮기고 영토를 확장해 나갔으며, 그 국토는 황하 남쪽에까지 이르는 대국으로 발전하였다. 

헌공의 아들 문공(文公 기원전 636~628)에 이르러서는 중원의 패자로 등장하여 춘추5패 중 한사람이 되었다. 그 후 춘추시대 후기에 이르러서는 그 국위가 급격히 떨어져 기원전 403년, 3진(三晋)으로 분할되기에 이르고 기원전 376년에 멸망하였다. 

제(齊) 

중국 춘추시대의 제후국 가운데 하나 

기원전 1100년경 주무왕(周武王)이 은(殷)나라를 멸망시킨 뒤 태공망(太公望 姜太公)을 영구(營邱)에 봉(封)함으로써 제후국으로 성립되었다. 수도는 임치(臨淄)이다. 

양공(襄公 기원전 698~686)때에 주위의 소국들을 병합하였으며 환공(桓公 기원전 685~643)은 관중(管仲)을 등용하여 주위 30여국을 병합하고, 춘추시대 최초의 패자(覇者)가 되었다. 

그러나 환공이 사망한 후 상속문제로 분쟁이 발생하고 내란이 끊이지 않아 왕족과 중신이 많이 죽었으며, 이 틈을 타 전 씨(田氏)가 세력을 장악하여 기원전 386년에 마지막 왕인 강공(康 기원전 405~379)을 폐위시킴으로써 강 씨(姜氏)의 제나라는 사라지고 전 씨(田氏)의 제나라가 새로이 성립되었다. 전 씨의 제나라는 전국7웅의 하나로 성장하였다. (혜왕, 장의, 소진

위(魏) 애왕, 신릉군, 범저

중국 전국시대 7웅의 하나. 양(梁)이라고도 한다. 

춘추시대 말기에 진(晋)나라 6경(卿) 가운데 한 사람으로 그 힘이 강대해진 위사(魏斯 文后)에 이르러 한(韓), 조(趙)와 함께 기원전 403년에 주(周)의 위열왕(威烈王)으로 부터 제후로 인정받았다. 위사는 안읍(安邑)에 도읍하였으고, 그 아들 무후(武侯)는 조, 한과 함께 진(晋)을 멸망시키고 그 영토를 3분하였다. 

위는 다른 열강에 비해 영토가 넓지는 않았으나 중원(中原)에 위치하여 인구가 많고 문화가 뛰어나 국세가 날로 번창하였다. 기원전 340년 수도를 대량(大梁)으로 옮겼다가 기원전 225년 진시황에게 멸망당했다. 
 

 
조(趙) 혜문왕, 평원군 

중국 전국시대 7웅의 하나. 

서주(西周)시대에 조성(趙城)에 살던 자의 자손이 조(趙) 씨 성을 갖게 되었으며, 춘추시대에 이르러 진(晋)나라에서 벼슬을 하여 공을 세웠다. 그 이후 조간자(趙簡子 기원전 518~458), 양자(襄子 기원전 458~425) 시대에 세력을 널리 키웠으며 이때 이미 진(晋)으로 부터 실질적으로 독립하였는데, 기원전 403년 주(周) 위열왕(威烈王)으로 부터 제후로 공인되었다. 

초기에는 진양(晋陽)에 도읍하였으며 후에 중모(中牟), 한단(邯鄲)으로 옮기었다. 무령왕(武靈王 기원전 325~299)대에 가장 융성하였으며, 그 뒤 전국시대 후기에는 진(秦)나라 다음 가는 강대국으로 까지 발돋움하였으나 장평싸움에서 진(秦)에게 패하면서 국력이 급속도로 쇠퇴하여 결국 멸망하였다. 

초(楚) 

기원전 8세기 경에 양자강 중류 지방에서 일어난 나라. 

육웅이라는 사람이 시조로서 그는 주나라 문왕(文王)을 섬기고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 후 춘추시대 초기 무왕(武王)대에 이르러 대단히 강해졌으며, 그의 아들 성왕(成王) 대에 이르러서는 제(齊)의 환공(桓公), 진(晋)의 문공(文公)과 패권을 다툴 정도가 되었다. 

당시 초나라는 오랑캐의 나라로 일컬어졌는데 이로 인하여 항시 멸시의 대상이 되었으며 그에 따라 중국의 여러 제후들은 남방의 적인 초나라에 공동으로 대항해 나가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며 이러한 공동전선에 중심인물이었던 제 환공이나 진 문공은 이로써 패업을 이루기도 하였다. 

초나라는 장왕(莊王 기원전 614~591)대에 이르러 그 세력이 가장 강력해져 춘추오패의 한 사람으로까지 성장하였다. 기원전 223년 부추(負芻)에 이르러 진(秦)나라에 의해 멸망하였다. 

연(燕) - 오자서, 악의 

춘추전국시대의 나라중 하나. 

시조는 소공석(召公奭). 춘추시대에는 약소한 제후국이었으나 전국시대에 들어서면서 전국7웅에 속할 만큼 강대해졌다. 소왕(昭王 기원전 312~279)시대에 악의(樂毅)를 등용하면서 부터 북방의 강국이 되었다. 영토는 지금의 하북성 (河北省) 북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북으로 요동(遼東)과 조선(朝鮮), 서쪽은 조(趙), 남으로는 제(濟)와 맞닿아 있었다. 

송(宋) 

중국 주대(周代)의 제후가 세운 나라. 

주나라 성왕(成王) 때에 은(殷)나라의 마지막 왕 주(紂)의 형인 미자계(微子啓) 가 은나라의 유민을 다스리기 위하여 봉한 것이 그 시초라고 한다. 도읍을 상구(商丘)에 두고 문화적으로 우수하고 국력 또한 강성해졌으나 양공(襄公)이 기원전 638년 초나라와의 홍수싸움(泓水之戰)에서 대패하면서 국력이 쇠약해져 갔다. 그 후 언이 즉위하면서 영토를 넓히고 기원전 318년에는 왕이라 칭하였으나 286년에 제, 초, 위의 3국에 토벌되어 멸망하였다. 
 

 
 
월(越)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나라. 

현재의 절강(浙江) 지방 부근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수도는 회계(會稽)였다. 문신(文身), 단발(斷髮)하고 문화가 낮아 만이(蠻夷)라 불리웠다. 초나라 영왕(靈王 기원전 541~529)대에 월은 초의 속국이었는데, 월군(越君) 윤상(允常)은 초의 지원을 받아 강력하게 성장하여 오(吳)와 싸우다가 죽었다. 이후 아들 구천(九踐)이 오왕 부차(夫差)를 멸하여 전성시대를 이룩하였으나 기원전 334년, 초에 의해 멸망하였다. 

오(吳) 

중국 춘추시대의 나라 중 하나. 

전설상으로는 주나라 문왕(文王)의 백부 태백(太伯)과 중옹(仲雍)이 남으로 가서 건국하였다고 전하나 원래는 입묵단발(入墨斷髮) 풍속을 가진 만족(蠻族) 이 세운 나라이다. 

기원전 6세기에 처음으로 초나라를 쳐서 강대해졌고 중국의 제후들과도 교섭하기 시작했다. 기원전 586년에 수몽(壽夢)이 처음 왕이라 칭하고 즉위하였다. 

기원전 494년경 부차(夫差)가 수군(水軍)을 이끌고 북상하여 제(齊)를 공격한 후 진(晋)과 맹주의 자리를 다투었으나 기원전 473년 월왕 구천(九踐)에 의해 멸망하였다. 

노(魯) 

중국 춘추시대의 국가 중 하나. 

주(周)나라 무왕(武王)의 동생 주공단(周公旦)이 시조이며 경공(頃公)에 이르기 까지 34대 약 855년간 지속되었다. 나라의 세력은 크지 않았으나 예(禮)를 중시하였다. 

공자(孔子)가 출생한 나라로 그는 한 때 노나라의 대사구(大司寇)로 정치의 실권을 잡은 적이 있으나 실패로 돌아가 위(衛)나라로 피한 후, 국가의 힘은 날로 쇠퇴해져 기원전 249년, 초(楚)나라 고열왕(考烈王)에게 멸망하였다. 

한(韓) 

중국 전국7웅 중의 하나. 

기원전 403년 진(晋)이 3진으로 나뉘어 제후로 임명 받을 때에 위, 조와 함께 제후국이 되었다. 시조는 한건(韓虔)이며 수도는 의양(宜陽)이며, 하남(河南) 서북부에서 산서(山西) 동남부에 걸쳐 번영하였으며 11대 왕안(王安)에 이르러 진(秦)에게 멸망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