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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호16국(五胡十六國 316 ~ 439) 

서진 말기에 일어난 황위 계승 다툼은 엄청난 규모의 내란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서진은 황족을 왕으로 봉하며 독자적으로 군대를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고, 그 결과 황위 계승권과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왕이 여럿 존재하였다. 8명의 왕들이 자신들의 군대를 거느리고 전투를 벌인 이 내란을 팔왕의 난이라 부른다. 팔왕의 난은 306년에 끝났지만, 이로 인하여 서진의 국력은 크게 쇠퇴했고, 8왕의 난 당시 왕족들이 전투를 위해 중국 내지에 정착해 살던 이민족을 용병으로 고용함으로써 이들의 입지는 매우 커지게 되었다. 

이때 흉노족의 유연(劉淵)이 서진의 쇠퇴를 호기로 삼아 304년 병주(?州 ; 지금의 산서성)에서 자립해 한(漢)을 세웠다. 같은해 사천(四川)에서도 이웅(李雄)이 자립하여 성한(成漢)을 건국하였다. 감숙(甘肅) 지방에서도 서진의 양주자사였던 장궤(張軌)가 독립적인 정권 전량(前凉)을 세웠으며 탁발부는 대(代)를 건국하였다. 이로써 오호십육국시대가 시작되었다. 

유연은 갈족 출신의 석륵과 한인 출신 장군 왕미(王彌)를 시켜 병주 일대를 공략하고, 308년 황제를 칭했으나, 310년에 죽고 아들 유화(劉和)가 이를 계승하였다. 유화는 인망이 없어 동생 유총(劉聰)이 제위를 찬탈했다. 유총은 311년에 낙양(洛陽)을 함락하고 서진 회제(懷帝)를 붙잡았다. 이것을 영가의 난이라고 부른다. 그후 장안에서 민제(愍帝)가 옹립되었으나, 316년에 유총에게 패하여 서진은 완전히 멸망하였다. 이에 서진의 왕족이었던 사마예가 남쪽의 건업(建業)에서 진을 재흥시키니 이 나라를 동진(東晉)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은 유총 사후 후계자 쟁탈전에서 유요(劉曜)가 승리하여 즉위하였으며 국호를 조(趙)로 고쳤다. 그러나 하북 정벌에 나섰던 석륵이 자립하여 하북·하남·산동을 장악하여 낙양을 경계로 유요 정권과 화북을 양분하게 되었다. 석륵 또한 국호를 조(趙)라고 하였기 때문에 구분하기 위해 유요 정권은 전조, 석륵 정권은 후조(後趙)라고 불렀다. 328년 유요가 낙양을 탈환하기 위해 출병했으나, 석륵의 조카 석호(石虎)에게 대패하여 포로가 된 뒤 살해당하니, 전조는 국력이 쇠퇴하여 후조에게 멸망하였다. 

화북 대부분을 장악한 후조에서는 333년 석륵이 죽고 석홍(石弘)이 즉위했으나 석호가 그를 폐위하고 스스로 즉위했다. 석호는 매우 포악하고 잔인하여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석호는 수도를 업(?)으로 옮겼고, 이 시기가 후조의 최전성기였다. 349년에 석호가 죽자 석륵의 양자 석민(石閔)이 경쟁자를 제거하고 즉위하였다. 석민은 이후 본래 성인 염씨(?氏)로 돌아가고 염위(?魏)를 세웠다. (염위는 워낙 단명한 왕조라 16국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후조는 351년에 염위에 의해 완전히 멸망하였다. 염위는 이민족에 대한 복수를 감행하였고 다수의 한인이 갈족을 상대로 대량의 학살을 벌였다. 

한편, 337년 요서(遼西)에 근거지를 둔 모용부가 모용황(慕容?)을 중심으로 전연(前燕)을 세우고, 349년 이후 후조 멸망의 혼란을 틈타 중원에 진출하였다. 전연은 352년에 염위를 멸망시켰으며, 같은 시기 섬서(陝西) 지방에서 저족의 부건(?健)이 장안에서 전진(前秦)을 건국(350년)하였다. 

화북이 혼란해지자 동진의 실권자 환온(桓溫)은 347년, 성한을 멸망시켜 촉(蜀) 지역을 장악하고 북벌을 감행하여 전진을 공격하였으나 패퇴하였으며 이를 계기로 전진의 국력이 증가해 360년에는 화북을 전연과 양분하였다. 부건의 뒤를 계승한 부견(부堅)은 뛰어난 인물로 한인 왕맹(王猛)을 등용해 국력을 키우며 대대적인 정벌로 각 나라를 정벌해 376년 화북을 완전히 통일하였다. 

383년 부견은 천하를 통일하기 위해 동진 정벌을 계획하여 100만이라 부르는 대군을 이끌고 남하하였다가 비수의 전투에서 동진군에게 대패한다. 이 전투의 패배로 전진의 국력은 단번에 쇠퇴하고, 각 민족이 제각기 독립하기 시작했다. 하북·하남·산동 일대에는 후연(後燕)이 건국되고, 병주에는 대(代 ; 북위(北魏))와 서연(西燕)이 세워졌다. 섬서에는 후진(後秦)과 서진(西秦)이 생겼고, 감숙에는 후량(後凉)이 태어났다. 그 외에도 감숙 지방에는 여러 민족에 의해 약소국가들이 할거하였다. 

이들 가운데 모용수(慕容垂)의 후연과 요장(姚?)의 후진이 가장 강력했다. 후연은 서연을 멸망시키고, 후진은 전진을 멸망시켜 영토를 확대하였고 다시 화북을 동서로 양분하였으나, 탁발부의 북위와 흉노의 혁련발발(赫連勃勃)이 건국한 하(夏)가 이들을 누르고 강대해졌다. 395년에 북위에 패배한 후연은 남연(南燕)과 북연(北燕)으로 분열되었고, 대부분의 영토를 북위에게 빼앗겼다. 후진 또한 하에게 공격을 당해 영토를 빼앗기다가 417년 동진의 유유(劉裕)에게 멸망당했다. 유유는 410년에 남연도 멸망시켰고, 그 공적으로 선양을 받아 송(宋)을 건국한다. 

하는 유유가 물러간 뒤 장안을 탈취해 북위와 함께 화북을 양분했으나, 427년 북위에게 패한 뒤 쇠퇴를 거듭하다 431년에 멸망당하고, 북위는 436년에 북연을, 439년에 북량(北凉)을 멸망시켜 화북을 통일하니 이로써 오호십육국시대는 끝나고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가 시작되게 되었다. 
 
 - 전량(前량 301-373, 장궤, 한족) 
 - 전조(前趙 304-329, 유연, 흉노) 
 - 성한(成漢 304-347, 이특, 파촉) 

 - 후조(後趙 319-351, 석륵, 갈족) 
 - 전연(前燕 337-370, 모용황, 선비) 
 - 전진(前秦 315-394, 부견, 저족) 

 - 후연(後燕, 383-408, 모용수, 선비) 
 - 후진(後秦 384-417, 요장, 강족) 
 - 서진(西秦, 385-400, 409-431, 걸복국인, 선비) 

 - 후량(後량 384-403, 여광, 저족) 
 - 남량(南량 397-414, 독발오고, 선비) 
 - 북량(北량 397-439, 저거몽손, 노수호) 

 - 남연(南燕 398-410, 모용덕, 선비) 
 - 서량(西량 400-421, 이고, 한족) 
 - 하(夏 407-431, 혁련발발, 흉노) 

 - 북연(北燕 407-436, 풍발, 한족) 

 

 
 
남북조 시대(南北朝 439~589) 
 
진(晉)나라와 수(隋)나라 중간시대에 해당하며, 이 동안 중국은 남북으로 분열되어 각각 왕조가 교체해서 흥망하였다. 남조는, 한족(漢族) 왕조인 송(宋)나라의 문제(文帝)에서 시작되어 제(齊) ·양(梁) ·진(陳)의 4왕조가 교체하여 나라를 세웠다가, 589년 진이 수의 문제(文帝)에게 멸망될 때까지를 가리킨다. 북조는 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의 혼란을 수습한 북위(北魏)의 태무제(太武帝) 때부터 시작되어, 이 북위가 동위(東魏)와 서위(西魏)로 분열하고 동위는 북제(北齊)에게, 서위는 북주(北周)에게 교체되었다가 북주가 북제를 멸망시키고 한때 화북지역을 통일하였으나, 얼마 못가서 외척 양견(楊堅:文帝)이 제위를 양위받고 건국한 수가 남조 최후의 왕조인 진을 멸망시키고 중국천하를 통일한 때까지를 말한다. 
 
이 시대의 정치적 특징으로는 남조에서는 귀족정치의 번영이었고, 북조에서는 군주권의 강화였다고 할 수 있다. 남조의 귀족은 구품중정법(九品中正法)을 이용하여 항상 고급관리의 지위를 점령하였다. 그러나 왕조의 교체는 군사권을 장악한 무관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북조의 군주는 선비족(鮮卑族) 출신의 탁발씨(拓跋氏)로서, 군주권강화를 위하여 지배종족인 선비를 모든 군사담당자로 구성하였으며, 호적을 정비하여 인보제(隣保制)와 삼장제(三長制)에 의해서 체제를 지탱하였다. 또한 균전법(均田法)이 처음으로 시행되었으며, 부병제(府兵制)도 채용하였다. 이 북조의 군주권 강화를 위하여 실시된 정치기구가 뒤에 수 ·당(唐) 두 제국의 정치기구로서 완비되었다. 

문화면으로는 유교보다 불교 ·도교(道敎)가 성하였다. 불교는 남조에서 불법존숭의 황제까지 나타났고, 북조에서는 국가불교적인 성격이 강하여 윈강[雲崗] ·룽먼[龍門]석굴과 마이지산[麥積山]석굴 등과 같은 대대적인 조불사업(造佛事業)이 성행하였다. 도교는 남조에서는 양의 도홍경(陶弘景)에 의해서 대성되었고, 북조에서는 북위 태무제 때의 도사(道士) 구겸지(寇謙之)가 천사도(天師道)를 대성하고 국가본위의 도교 종파를 이루어 중국 도교를 종교로서 확립되게 하였다. 

문학은 남조에서는 진(晉)에서 송(宋)에 걸쳐 도연명(陶淵明)과 사영운(謝靈運) 등이 나타났으며, 그 경향은 귀족사회의 풍조를 반영하여 화려한 수사를 중용한 사륙변려체(四六騈儷體) 문장이 널리 보급되었다. 양나라 소명태자(昭明太子)의 《문선(文選)》과 서릉(徐陵)의 《옥대신영(玉臺新詠)》은 그와 같은 경향을 바탕으로 하여 편찬된 시문집(詩文集)이다. 이 같은 귀족적인 경향에 대하여 생생한 민간의 감정을 표현한 악부(樂府)가 있었는데, 남조의 악부는 연애감정을 노래한 것이 많았고 북조의 악부는 전쟁과 영웅을 노래한 용맹하고 웅장한 것이 많았다. 이 밖에 문학작품이 아닌 것으로, 북위의 여도원(?道元)의 《수경주(水經注)》와 양현지(羊衒之)의 《낙양가람기(洛陽伽藍記)》,가사협(賈思?)의 《제민요술(齊民要術)》, 안지추(顔之推)의 《안자가훈(顔子家訓)》 등이 주목받을 만한 작품이다. 
 
- 북조 : 북위(北魏 386-534), 동위(東魏 534-550), 북제(北齊 550-577), 서위(西魏 535-556), 북주(北周 556-581) 

- 남조 : 송(宋 420-479), 제(齊 479-502), 양(梁 502-557), 진(陳 557-5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