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배기유머 > 고사성어 > 한국 > 후백제(後百濟) (후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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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말기인 892년 완산주(完山州:全州)에서 견훤(甄萱)이 세운 나라로 후삼국의 하나. 

견훤은 상주견씨(甄氏)의 시조로 본성은 이(李)씨이며 신라 말기의 사불성 (沙弗城 : 尙州)의 호족 아자개(阿慈介)의 아들로 상주(尙州) 가은현(加恩縣: 聞慶市 加恩邑) 농민 출생(867년)이다. 

군에 들어가 서남해(西南海) 방면에서 전공을 세우고 비장(裨將)이 되었다. 이때 신라는 국정이 문란하여 각지에 도둑이 창궐하였는데, 

892년(진성여왕 6년) 견훤은 기회를 포착하여 군사를 일으켜 무진주(武珍州: 광주)에 쳐들어가 이를 점령하며, 후백제(後百濟)라 자칭하며 신라에 반기를 들었다. 

900년(효공왕 4년) 완산주(完山州:全州)에 입성하여 스스로 왕이라 칭하고, 나라 이름을 후백제라 하였으며, 백성들에게 백제 의자왕의 숙원을 풀어준다고 선언하였다. 

관제를 정비하는 한편, 중국의 오(吳)·월(越) 에도 사신을 보내어 국교를 맺으면서, 궁예(弓裔)의 후고구려(後高句麗)와 자주 충돌하며 세력 확장에 힘썼다. 그 뒤 왕건(王建)이 세운 고려와도 수시로 혈전을 벌여 군사적 우위(優位)를 유지했다. 

901년(효공왕 5년) 궁예가 스스로를 왕이라 하였다. 8월에는 직접 대야성 (大耶城 지금의 합천)을 치려다가 실패하고, 군사를 금성(지금의 나주) 남쪽으로 옮겨 그 부근의 부락을 약탈하였다. 

910년(효공왕 14년) 3,000명의 병력으로 10여일간 신라의 나주성(羅州城)을 포위하고 싸웠으나, 궁예가 수군으로 급습해 와 물러났다. 

916년(신덕왕 5년) 대야성을 공격하였으나 이기지 못하고 돌아왔다. 

918년(경명왕 2년) 6월에 태봉국 궁예 휘하의 병사들이 왕건(고려 태조 太祖) 을 추대하니, 궁예는 도망하다가 부하들에게 피살되고 왕건이 즉위하였다. 상주 아자개 고려에 투항. 

920년(경명왕 4년) 10월에 보병과 기병 1만 명을 거느리고 대야성(大耶城)을 쳐서 함락하고, 진례성(進禮城)으로 진격하였으나 고려 태조 왕건이 신라를 구원하자 퇴각하였다. 

922년(경명왕 6년) 6월 휘암을 사신으로 삼아 쓰시마에 파견하였다. 

925년(경애왕 2년) 11월 조카 진호(眞虎)를 볼모로 보냈다. 

927년(경애왕 4년) 9월 신라의 수도인 금성(金城:경주)을 함락하여 친려(親麗) 정책을 쓰던 경애왕(景哀王)을 살해한 후, 김부(金傅)를 왕(경순왕 敬順王)으로 세워놓고 철수하여 신라인의 원한을 샀다. 

929년(경순왕 3년) 고창(古昌:안동)에서 왕건의 군사에게 크게 패한 후부터 차츰 형세가 기울어 유능한 신하들이 계속 왕건에게 투항하고, 

934년(경순왕 8년) 웅진(熊津:공주) 이북의 30여 성이 고려에 귀속했다. 

견훤에게는 배다른 아들이 많아 부자·형제 사이에 불화와 반목이 그치지 않았는데, 견훤은 넷째아들 금강(金剛)을 유독 사랑하여 장차 왕위를 물려주려 하였다. 

이를 눈치 챈 신검(神劍) 등 다른 아들들은 935년 견훤을 금산사(金山寺)에 가두고 금강을 죽인 다음, 신검이 왕위에 올랐으나 3개월 후 탈출하여, 고려 왕건에게 투항하여 상보(尙父) 칭호와 양주(楊州)를 식읍(食邑)으로 받았다. 

936년 왕건에게 신검의 토벌을 요청하여 10만 대군으로 후백제를 멸망시켰다. 이로 후백제는 건국한 지 45년 만에 멸망하고 말았다. 

그러나 고려의 왕건이 신검 등을 우대하는 것을 보고 분을 못이겨 앓다가 얼마 뒤 황산(黃山: 충남 논산군 연산면) 불사(佛舍)에서 등창이 나서 죽었다. 
    

견훤의 출생설화
 
옛날 광주 북촌에 한 부자가 살았는데 그에게 아름다운 딸이 하나 있었다. 
딸이 아버지에게 아뢰기를 밤마다 자색 옷을 입은 남자가 침실에 와서 자고 간다고 하자 아버지가 그 남자의 옷에 실을 꿴 바늘을 꽂아 두라고 일러서 그 딸이 말대로 했는데, 이튿날 따라가 보니 북쪽 담 밑에서 실끄트머리가 발견되었는데, 바늘은 큰 지렁이의 허리에 꽂혀 있었다. 
 
얼마 후부터 그녀에게 태기가 있고 후에 아들을 낳았다.
 
15세가 되자 스스로 견훤이라 이름하고 900년에 후백제를 건국하여 완산군(현 전주)에 도읍을 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