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오미(Naomi)

뜻 : 나의 즐거움

베들레헴 사람 엘리멜렉의 아내, 룻의 시어머니 (룻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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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미라는 이름의 뜻은 [희락] [즐거움] [행복]이며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 엘리멜렉의 아내이자 룻의 시모이다. 그는 [나오미]라는 이름을 따라 보다 즐겁고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하여 약속의 땅 베들레헴을 떠나 그모시신(신)의 고장인 모압땅으로 이주했다.

그러나 샤다이(전능하신)하나님께선 신앙의 고장을 떠나 불신앙의 땅에 묻혀버린 나오미 일가에 채찍을 가하심으로 다시 귀향케 하신다. 즉 남편 엘리멜렉과 두 아들 말론과 길룐을 잃은 나오미는 자부 룻과 함께 고향땅으로 고뇌의 발걸음을 돌리지 않으면 안되었다.

나오미와 룻이 베들레헴 성문에 이르렀을때 온 성읍 사람들이 떠들며 이르기를 [이는 나오미가 아니냐]하며 반긴다. 나오미가 그들에게 [나를 나오미(희락)라 칭하지 말고 마라(괴로움)라 칭하라]( 룻기 1:19-20)고 했다. 이것은 성도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저버리고 삶의 방향을 세속으로 돌이킬 때 당해야 하는 엘 샤다이의 징계에 의한 고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룻기의 주제는 여기에 머무르지 아니하고 불행의 나오미가 엘샤다이의 능력에 의하여 다시 희락의 나오미로 탈바꿈하는데 있다 . 유형론적 성서해석법에 따르면 나오미는 성령, 룻은 교회(성도), 보아스는 그리스도의 모형인데 나오미는 룻과 보아스 사이에 행복한 만남이 실현되도록 중보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 그의 책임이었다.

시모 나오미는 자부 룻에게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로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네가 함께하던 시녀들을 둔 보아스는 우리의 친족이 아니냐](룻2:1-2)하면서 룻으로 하여금 보아스를 신뢰케 하며 만나게 했다. 이것은 성령이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신뢰토록 하고 그를 만나게하며 의지하도록 하는 역사와 다름없다.

이와같은 그녀의 중보역할을 통하여 룻과 보아스가 결합하고 그들 사이에서 다윗의 조부 오벳이 태어났을 때 나오미는 흔히 히브리 문학에서 볼 수 있는 해피 앤딩을 누리게 되었다. 나오미의 중보와 룻의 복종이 연합하여 새 행복을 창조했다고 단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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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미가 두 자부에게 떠나라고 권하자 그들은 늙은 시어머니를 홀로 두고 떠날 수 없다고 한다. 그러자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인하여 더욱 아프도다"(룻1:13)고 한탄하자 큰 자부인 오르바는 떠나고 룻만 남았다. 나오미는 이 일에 대해 "네 동서는 그 백성과 그 신에게 돌아 가나니" (룻1:13)라며 룻도 함게 떠나라고 권한다.그러자 룻은 이렇게 대답한다.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곧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룻1:16~17) 고 대답함으로 나오미는 룻을 동반하고 베들레헴에 이르게 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분명히 룻이 나오미를 따르는 것은 시어머니에 대한 연민의 정이 아니라 나오미의 백성과 그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안 식과 신앙을 소유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곧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약속과 기업을 받을 언약의 백성이며 그들의 하나님이야 말로 그 약속을 이루어 주실 인격이시며 전능자이시며 형태만 존재하시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온 우주의 왕이시며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방여인 더군다나 모압의 여인이 약속의 땅에 들어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사실은 대단한 은총이 아닐수 없는 획기적인 사 건이다. 원래 모압족속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소돔성이 심판을 받을때 겨우 두 딸과 함께 구원함을 받고 산속에서 숨어 살다가 두딸이 아버지를 취하게 한후 동침하여 난 아들 곧 모압과 암몬의 후예들이었다(창19:36~38).

이처럼 불륜의 관계에서 출생된 모압족속과 암몬족속이었으므로 모세는 "암몬과 모압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라니그들에게 속한자는 십대뿐 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신23:3)고 선언하였던 것이다. 그런 모압여인이 나오미와 함께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된것은 하나님의 큰 은혜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 하여 두사람의 과부가 베들레헴에 이르자 사람들이 놀라 달려 나왔다. 나오미는 그들에게 "나를 나오미(그뜻은 희락)라 칭하지 말고 마라(괴로움)라 칭하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였음 이니라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나로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룻1:20~21)고 말하면 서 자신이 얼마나 비참해졌으며 그 심경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에 대하여 말하여 주고 있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와 그 기업에서 쫓겨날 때의 모습을 보는듯 하다.하나님의 은혜를 한번 저버리기만 한다면 나오미와 같이 비참하고 괴로우리 만치 철저하게 심판을 받는 것이다. 이와같이 철저하게 낮추신 연후에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서서히 회복시키신다. 나오미가 베들레헴에 도착했을 시기는 마치 보리를 추수할 때였다(룻 1:22).

하나님은 모든 소망이 끈어진 나오미에게 전혀 새로운 삶의 방법으로 축복해 주실 계획을 이미 정해 놓으셨다. 2장1절을 보라. "나오미 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중 유력한 자가 있으니 이름은 보아스더라" (룻02:1)라고 기록하고 있지 않은가 ? 누가 보아스라는 사람을 알았고 그가 나오미에게 소망을 줄 것이라는 기대를 했는가 ? 아무도 생각지도 못했고 나오미는 꿈도 꾸지 못했던 일이요,보아스 역시 그런 일이 있으리라는 계획도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시간안에서 이미 모든 일들을 계획하셨고 때마침 추수기에 나오미가 그곳에 도착하도록 인도해 주셨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약속의 땅으로 돌아 올때는 우리가 전혀 예기치 않았던 때와 장소와 방법으로 풍성케 하실 계획을 예비해 놓으시는 것이다.

마침 룻은 이스라엘의 관례대로 보리이삭을 줍기 위해 밭에 나갔다가 정말 우연하게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안에선 이미 예정된대로 보아스의 밭에 들어가게 되고 그곳에서 보아스를 만난다. 그 자리에서 보아스는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모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 내게 분명히 들렸느니라"(룻2:11)고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충정을 다한 것을 칭찬하면서 "여호와께서 네 행한 일을 보응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룻2:12)고 축복한다.

그리고 식사자리에 룻을 초청하여 함께 떡을 나누며 볶은 곡식을 줌으로 룻은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사환들에게 곡식을 조금씩 뽑아 버려서 룻이 마음껏 곡식을 줍도록 배려를 베풀어 주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가 숨겨져 있었다.원래 식사자리에 초대를 받는다는 것은 단순히 한끼를 해결하자는 정도의 의도가 아니다. 적어도 식사자리에 초대를 받는다는 것은 단순히 한끼니를 해결하 자는 정도의 의도가 아니다.

적어도 식사자리에 초대를 받았다는 것은 그 집안의 상속을 받을 만한 자격을 가지고 있다는 증표요 한 식구나 다름없다는 보증이 되는 것이다. 물론 보아스는 룻이 가여워 무의식중에 초대하였지만 머지않아 룻은 보아스와 결혼하게 되고 영원한 한 식구가 됨을 볼때 이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보아스가 룻에게 축복하기를 "여호와의 날개"아래서 영원한 보호를 얻어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받을 것이라고 했는데 오히려 하나님은 보아스의 옷자락 밑에서 곧 보아스의 날개 밑에서 룻이 영원한 보호를 받으며 보아스의 기업을 받도록하신다. 이것 역시 보아스가 무의식 가운데서 한 축복이었으나 하나님은 영원한 예정 아래 룻을 보아스의 날개 아래 거하게 하시는 은총을 베풀어 주셨다.

▶ 나오미/믿음을 떠난 생활·고향 버린자의 말로는 비참

룻기:1장1∼5절

나오미는 「우리의 즐거움」이란 뜻이다.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인데 그의 남편은 엘리멜렉이었다. 사사시대의 사람들로 흉년을 피해 모압지방에 이주하여 살았다. 10년동안 모압에 거주하면서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을 모압여인과 결혼시켜 이방 자부를 맞게 되었다.

그러나 이 모압에서의 이민 생활은 나오미에게 치명적인 고통을 안겨준 세월이었다. 그렇게 늙지 아니한 엘리멜렉이 세상을 떠나고 두 아들 말론과 기룐도 차례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겪은 이 큰 슬픔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나오미에게는 너무나 큰 상처였다.

이렇게 외롭게 되자 자기 고향으로 돌아갈 결심을 하게 된다. 그 때 한 며느리 오르바는 시어머니에게 입 맞추고 울면서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한 며느리 룻은 끝까지 시어머니를 따라 베들레헴으로 왔다. 십년만에 나오미를 맞는 고향 베들레헴 사람들은 뜨겁게 그를 환영했으나 나오미는 몹시 부끄러워 하며 나오미라고 부르지 말고 자기를 마라(괴로움)라 불러 달라고 요청하며 고향에 정착하게 되었다.

흉년을 피해 모압으로이주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다. 더욱이 이방 여자로 두 자부를 맞이한 것도 율법을 무시하는 불신앙의 행위였다. 믿음을 떠난 생활은 모두 실패였다.

교훈과적용

첫째,흉년을 피하는 길이 모압을 택하는 방법만은 아니었다.경솔한 불신앙의 선택이 큰 아픔을 가져왔다.

둘째,결혼에 앞서 신앙의 가정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하나님과 신앙을 외면한 결혼은 내적으로 실패한 것이다.

<이병돈목사·은평교회>


▶ 나오미 Naomi. [Na'omi]


Wife of Elimelech, mother of Mahlon and Chilion, and mother-in-law of Ruth. After dwelling ten years in the country of Moab, when her husband and sons were dead, she returned to the land of Judah, with the widowed Ruth. She asked to be called no more Naomi, 'pleasant,' but Mara, 'bitter,' saying "for the Almighty hath dealt very bitterly with me." She sought the welfare of Ruth, whose marriage with Boaz comforted her, and she became nurse to their son Obed.  Ruth 1 — Ruth 4. Typically she represents desolate Israel, as Ruth does the despised but pious remnant brought into full blessing at the end on the ground of sovereign mercy, even as Gentiles, yet casting themselves on the goodness of the Kinsman-Redeemer: see Isa. 63:16.


(룻01: 베들레헴에 돌아온 나오미와 룻

(룻02: 보아스가 룻을 도와주다

(룻03: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나오미와 룻

(룻04: 룻이 보아스와 결혼하여 아들 오벳을 낳다


(사63:16 주는 우리 아버지시라 아브라함은 우리를 모르고 이스라엘은 우리를 인정치 아니할지라도 여호와여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라 상고부터 주의 이름을 우리의 구속자라 하셨거늘


--- Morrish Bible Diction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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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한글KHRV( 120일1독, 1년1독, 권별, 성경통독 )

STUDY - 구절(WESLEY), 단락(MATTHEW), 읽기(Way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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