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배기유머 > 고사성어 > 한국역사 > 백제분국(百濟分國) 왜국(倭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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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古記)에서
   1대 신무왕(神武王) -> 2대 수정왕(綏靖王) -> 3대 안녕왕(安寧王) 
-> 4대 의덕왕(懿德王) -> 5대 효소왕(孝昭王) -> 6대 효안왕(孝安王) 
-> 7대 효령왕(孝鈴王) -> 8대 효원왕(孝元王) -> 8대 효원왕(孝元王) 
-> 10대 숭신왕(崇神王 300-318) -> 11대 수인왕(垂仁王 318-343) 
-> 12대 경행왕(景行王 320-343) -> 13대 성무왕(成務王 343-361) 
-> 14대 중애왕(仲哀王 355-362) -> 15대 예전왕(譽田王 361-394) 
-> 16대 응신왕(應神王 383-410) -> 17대 왜찬왕(倭讚王 410-427) 
-> 18대 이중왕(履中王 427-432) -> 19대 인덕왕(仁德王 429-442) 
-> 20대 왜제왕(倭濟王 442-457) -> 21대 청령왕(淸寧王 459-461) 
-> 22대 반풍여왕(飯豊女王 462-475) -> 23대 안한왕(安閑王 475-505) 
-> 24대 선화왕(宣化王 506-531)
왜의 시작은 야마대국(邪馬臺國)의 여왕 비미호(卑彌乎)로 시작된다. 

【비미호(卑彌乎) 이분이 바로 일본 최초의 여왕인 아마테라스(즉 天照大神)로 추정되어 진다. 왜(倭) 여왕 비미호가 삼국사기에 최초로 등장한 기록을 살펴보면 "삼국사기  8대 아달라 이사금 20년 여름 5월 왜국 여왕 비미호가 사신을 보내어 화평을 요청해 왔다."】 

비미호가 신라에 왕자를 사신으로 보내어 통교한(서기 173년)후 가야국에 들려 가야국 공주와 통혼하여, 알알이[경경저(瓊瓊杵)] 왕을 낳으니, 이분이 바로 김수로왕(金首露王)의 외손이시다. 

【알알이[경경저(瓊瓊杵)] 알알이 왕의 왜국 강림은 서기 173년대로 추정된다. 중국 사서로 보면 알알이는 왜국 남왕 비미구노(卑彌狗奴)로 추정되고, 비미호의 통치를 따르지 않았다. 이후 비미호 여왕의 야마대국은 비미구노왕에 의하여 멸망되었는데 서기 247년 경이다. 이 왜남왕 비미구노가 바로 가야왕자 알알이이다. 그후 일본 땅은 심한 전란기를 거쳐 다시 비미호의 딸 일여(壹與)가 추대되어 평화 속의 공존을 달성했는데 서기 253년 대이다.】 

1대 신무왕(神武王) - 이파리(伊波禮)왕

본래 이름은 선(先)으로 가야국 거등왕의 아들이다. 
왕명으로 왜국을 정벌하고, 야마대국의 여왕 일여(壹與)를 왕비로 맞이하였다. 

2대 수정왕(綏靖王) - 눈깔왕

갈성(葛城)에 궁궐을 두었다. 

3대 안녕왕(安寧王) - 담쟁이왕

4대 의덕왕(懿德王) - 칼왕

신라 계왕이다. 

5대 효소왕(孝昭王) - 밝혀시네왕

의덕왕의 아들이다. 

6대 효안왕(孝安王)

본래 이름은 여비조(餘飛鳥)로 백제계 최초의 왕이다. 

7대 효령왕(孝鈴王)

1년(서기 282년) 이름은 의려(依慮)로 부여계 불열국(拂涅國) 왕이었다. 선비의 모용외에게 쫓기어 왜국(倭國)으로 도망하여 즉위하였다. 

【불열국(拂涅國) 우리가 아는 해모수의 부여는 북부여인데, 졸본부여의 성립으로 해부루가 동부여로 떠나갈 때에 이를 따라가지 않은 북부여의 후손이다. 고구려 대무신왕 에 의해 낙씨부여라고도 인정되었다. [요사지리지]에서는 불열국(拂涅國)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불열국은 [위지동이전]에서 부여국이라고 기록하고 또 예(穢)(hu )라고도 하였으니, 예왕지인(穢王之印)이라는 국새(國璽)를 가졌었다. 요녕성 부신(阜新市) 지방의 불열국은 고구려 태조대왕(53-146) 때에 고구려의 중국 공격을 저지하여 괴롭혔으며, 또한 불열국은 요동왕 공손탁(194年 卒)의 질녀를 왕비로 맞이했고 의려왕(-282年)에 이르러 선비족 모용외에게 쫓겨 일본으로 갔다.】 

8대 효원왕(孝元王)

이름은 의견(依牽)으로 의려왕의 아들이다. 

9대 개화왕(開化王)

효원왕의 아들로 이름은 의화(依華)이다. 

시대가 오래되어 그 시기를 알수 없으나 1대 신무왕에서 시작하여 9대 개화왕에 이르니, 그 연도가 서기 163년에서 203년 사이이다. 이는 모두 한 계통의 왕이 아니고, 각각의 영지를 가진 왕으로 생각되어지니, 각각 가야계신라계백제계부여계의 족속이 각각 영지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10대 숭신왕(崇神王)

1년(서기 300년) 이름은 의라(依羅)로 의려왕의 아들이다. 불열국이 망하고 3년(285년)후 동진(東晋)의 도움으로 부여국을 다시 세웠으나 모용외의 침략으로 무너지고, 다시 의로(懿路)땅 【요하 동쪽으로 철령시 남쪽 (심양시북계) 으로 추정】에 의라국을 세웠다. 이때가 서기 296년이다. 이후 다시 왜국으로 와서 즉위하였다. 

11년(서기 310년) 아들 풍성(豊城)을 동국왕(東國王) 【숭신왕의 제도는 지금의 구주지방이고 이때 혼슈로 진출한 것으로 생각되어진다】에 명하였다. 

16년(서기 315년) 임나인(任那人)이 조공하였다. 

【임나인(任那人) 의라왕이 왜국에 오면서 중간에 대마도에 들려 임나를 건설하니 후에 왜국을 평정하니 임나인이 조공한 것이다.】 

19년(서기 318년) 12월 왕이 서거하였다. 

11대 수인왕(垂仁王) 

1년(서기 318년) 숭신왕의 아들이다. 

2년(서기 319년) 임나인이 조공하였다. 

3년(서기 320년) 신라왕자 천일창(天日槍) 왔다. 

4년(서기 321년) 사본왕(沙本王)이 반란하였다. 

【사본왕(沙本王) 규슈 아소산의 다파라국(多婆羅國) 시조였던 협보(陜父)의 중국 발음이 시아후 (陜父)이므로, 사호(沙本)왕은 고구려계 협보의 자손으로 추정된다. 】 

26년(서기 343년) 경행왕이 출운(出雲)을 치자 태자를 인질로 보냈다. 

백제의 왜국 진출로 인하여 수인왕은 경행왕에게 패하니 부여계의 왜국통치 기간은 이로써 끝난다.

12대 경행왕(景行王)

1년(서기 320년) 이름은 실(實)이다. 분서제의 아들로 비류제 15년에 왜국왕에 봉해졌다. 

2년(서기 321년) 웅습국(熊襲國)이 조공을 하지 않자 이를 정벌하였다. 

【웅습국(熊襲國) 구마소(熊襲;九州)가 (백제에게) 조공을 하지 않아 이를 정벌 하였는데, 부여로부터 도래한 의려(효령)왕과 의라(숭신)왕에게 이미 정복되어 규슈로부터 백제에 대한 조공이 그친 것이다.】 

16년(서기 335년) 무내숙녜(武內宿녜)를 동부(東部)에 파견하였다. 

18년(서기 337년) 왕자 오구나(男具那)를 보내어 왜국 서부(西部)를 공격하였다. 

【오구나(男具那) 경행왕의 아들로 왜건명 (倭建命)이라고 한다. 수인왕과의 전투중에 전사하였다.】 

22년(서기 341년) 오구나(男具那)를 보내어 왜국 동부(東部)를 공격하였다. 

24년(서기 343년) 오구나(男具那)를 보내 출운(出雲)을 치자 수인왕이 태자를 인질로 받쳤다. 

왕이 백제 계제(契帝)로 추대되었다.(삼국사기 즉위 원년은 서기 344년이다.) 근초고왕자를 왜왕으로 봉했다.

 위로
13대 성무왕(成務王)

1년(서기 343년) 근초고(近肖古)왕자로 비류제의 아들이다. 24세에 왕위에 올랐다. 

3년(서기 345년) 백제 계제가 승하하자, 백제 근초고제로 즉위(삼국사기 즉위 원년 서기 346년이다.)하였다. 

4년(서기 346년) 무내숙네를 대신(大臣)에 명했다. 

5년(서기 347년) 분봉제도(分封制度)를 도입하여 백제의 왕족을 각지에 분봉(分封)하였다. 

13년(서기 355년) 중애가 반란하여 왜국왕위에 올랐다. 

16년(서기 358년) 왕자 근구수를 보내어 중애를 정벌하였다. 

원래 근초고태제가 왕자 근구수를 왜왕에 봉하여 중애왕을 제거하고 다시 백제국 분국 왜국을 둔 것으로 사료되어지나, 일본서기등 자료에 이 기록이 빠져 있음으로 해서 부득이 성무왕의 기록에 병합하여 기록한다.】 

18년(서기 360년) 근구수왕자가 예전(譽田)이 태어나자, 예전을 왕으로 지명하고, 신공왕후(神功王后)가 섭정하였다. 

【예전(譽田) 근구수왕자가 중애왕의 비 식장숙희를 취하여 낳은 자식으로 추정된다. 훗날 이분이 침류제가 되신다.】 

【신공왕후(神功王后) 중애왕의 비였던 식장족희로 예전왕 즉, 침류왕의 어머니이다. 삼국사기의 기록에는 아이부인(阿爾婦人)으로 기록되어 있다.】 

19년(서기 361년) 근구수왕자가 떠나면서 예전을 왜왕에 임명하였다. 

14대 중애왕(仲哀王)

1년(서기 355년) 경행왕의 손자로 아버지는 오구나이다. 반란하여 왜왕에 등극. 

4년(서기 358년) 근초고제가 왕자 근구수를 보내어 치니, 중애왕이 식장족희 (息長足姬)를 인질로 보내었다. 

【식장족희(息長足姬) 중애왕의 왕비로 서기 356년에 왕비가 되었다.이 오키나가라고 읽는 식장족희는 기장족희(氣長足姬)라는 기록도 있어서 기장(機長; 경남 양산) 벌(足)의 여자라는 설이 있으며 이는 가야계 일본인이라고 고려된다. 중애왕이 자립하기 위해서 가야계와 연합한 것이었다.】 

8년(서기 362년) 6월 왕이 암살당하였다. 

15대 예전왕(譽田王)

1년(서기 361년) 근구수왕자가 백제태자로 임명되어 떠나면서 예전을 왕으로 임명하였다. 

2년(서기 362년) 5월 백제 근초고태제가 칠지도를 제작하여 예전이 왜왕임을 증명하였다. 

9년(서기 369년) 백제와의 교통로를 확보하기 위해, 백제 장수 목라근자 (木羅斤子), 사사노궤(沙沙奴궤) 등과 함께, 비자본(比自본), 남가라(南加羅), 훼국(喙國), 안라(安羅), 다라(多羅), 탁순(卓淳), 가라(加羅) 등 7국을 쳐서 백제영토로 하였다. 

이후 비리(比利), 벽중(벽中), 포미지(布彌支), 반고(半古) 등이 항복하였고, 다시 침미다례(침彌多禮; 珍島)를 쳐서 백제에 속하였다. 

【백제와의 교통로를 확보 백제 사신들은 근초고제의 사자로서, 새로이 왜왕이 된 아기 침류왕을 위해 선물, 즉 왜왕 임명장인 칠지도를 가져가는 중에 탁순왕은 백제 사신 구저들을 억류하고 신라로 압송하기까지 하였다. 신공황후의 신하 사마숙녜가 왜국으로 부터 탁순국에 다다르니 일이 그르쳐진 것을 알고 사마숙녜는 그의 가신 니하야(爾波移)를 백제로 보내었고, 사마숙녜는 왜국으로 귀국하였다. 가신 니하야는 백제 근초고제의 선물로서 예전천황의 복식을 위한 오색 비단과 무기의 재료인 철재(鐵才) 40괴를 받아 돌아갔다. 한편 신라에 억류되었던 백제 사신 구저들은 다음해에 왜국에 도달하였다. 이렇든 왜국과 백제의 중간에 끼인 탁순국의 정벌함으로써 왜국과 백제의 교통로를 확보하기 위하여, 탁순국등 7국을 정벌한 것이다.】 

【비자본(比自본) 빛홀(忽)에 해당하며, 섬진강(閃津-->蟾津)과 관련하여 광양(光陽)과 하동(河東) 부근으로 추정된다.】 

【남가라(南加羅) 거제도(巨濟島)로 추정한다. 금관가야, 대가야보다 먼저인 구야한국 (狗邪韓國), 구야가야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한다. 고성에서 가까운데 대마도가 보이는 가라산이 있다. 따라서 [위지왜인전]의 구야가야(拘邪伽倻)가 거제도이다.】 

【탁순(卓淳) 탁씨(卓氏)가 살았던 산청군 단성(丹城)면 부근으로 추정한다.】 

【가라(加羅) 고성(固城)군으로 추정한다.】 

12년(서기 372년) 칠자경(七字景) 및 칠지도(七支刀)등을 하사 받았다. 

14년(서기 374년) 백제 근초고제가 서거하자 근구수제가 제위에 올랐다. 제께서 예전을 태자에 봉했다. 

22년(서기 382년) 사지비궤(沙至比궤)와 목라근자(木羅斤子)를 보내어 각각 가야신라를 쳐 왜국에 복속시켰다. 

23년(서기 383년) 근구수제가 서거하자 왕이 백제 침류제로 등극하였다. (삼국사기 즉위 원년은 서기 384년이다.) 

24년(서기 384년) 침류제께서 아신제에게 양위하고 왜국으로 오니 다시 왜왕에 등극하였다. 아신제가 너무 어려 숙부 진사제가 제위를 찬탈하였다.(삼국사기 즉위 원년은 서기 385년이다.) 

28년(서기 388년) 침류제께서 예전왕으로 다시 등극하였다. 

【31년(서기 391년) 이로부터 백제국과 왜국과의 관계는 그 위치가 역전된 듯 하다. 왜국이 백제의 분국으로서의 위치가 침류제의 왜국으로의 도일후 또한 광개토태제의 백제 정벌 후 백제는 왜국의 지원을 받는 처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31년(서기 391년) 예전왕께서 기각숙녜(紀角宿녜)등 4명의 장수를 보내어, 진사제를 살해하고 예전왕의 원자인 아신제를 등극시켰다. (삼국사기 즉위 원년은 서기 392년이다.) 

【391년 광개토왕(廣開土王)의 침공을 당하여 백제 진사왕(辰斯王)은 막을 힘이 없었다. 그해 11월에 진사왕은 구원(狗原)의 행궁에 나들이하였다가 돌아오지 않았다. [삼국사기]에서는 결국 구원의 행궁에서 죽었다는 기록을 추가하였다.】 

34년(서기 394년) 예전왕께서 서거하셨다. 

16대 응신왕(應神王)

1년(서기 383년) 일명 남제왕(男弟王)으로 중애왕의 아들로 왜왕에 등극하였다. 

6년(서기 388년) 침류제께서 예전왕으로 다시 왜국왕에 등극하니, 왕이 이세국(伊勢國년)왕으로 격하되었다. 

12년(서기 394년) 예전왕이 서거하자 다시 왜국 응신왕으로 등극하였다. 

14년(서기 396년) 백제고구려의 침략으로 수도가 함락되자, 전지왕자를 인질로 보내어 군사를 빌려갔다. 

17년(서기 399년) 제현군(諸縣君) 등 17현민이 귀화하였다. 

【제현군(諸縣君) 모로왕으로 추정되며, 그 위치는 대동강 이북으로 추정된다. 백제 모로성(慕盧城)의 현민이 그 태수와 함께 고구려의 남하로 인하여 그 영지를 잃고, 왜국으로 귀화한 것으로 보인다.】 

18년(서기 400년) 고구려가 구주(九州)에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 설립하였다. 

광개토왕은, <광개토왕 비문>에 의하면, 왜국군으로부터 신라를 구원하고 왜, 백제 연합군의 고구려 침공을 분쇄한 뒤에 400년에 일본을 원정한 기록이 있으며, [한단고기] 에도 영락 10년, 서기 400년 경자년에 광개토왕(廣開土王)은 일본 정벌을 단행하였다.

광개토왕의 일본 침공으로 인하여 서기 400년에 대마도와 규슈(九州)의 지배권을 왜국과 백제는 고구려에게 빼앗겼다.  광개토왕이 파견한 고구려군은 대마도(對馬島)를 점령하고 안라인들은 고구려의 후원으로 규슈를 지배하여, 당시 왜왕인 응신왕을 무력화시켰다. 

이때 대마도에 고구려의 일본 통제를 위한 임나일본부가 설치되었고, 고구려계 안라인들이 대마도와 규슈를 관리하게 되었다고 사료된다. 고구려는 이들 부여유민과 혈통적으로, 언어적으로 가까웠으므로 이들의 안라, 즉 함안(咸安; 아나가야 )에 입성하였고, 안라인들을 규슈로 보내어 규슈에도 안라국의 분국(分國)을 세워 일본을 통제한 것이다. 이것이 서기 400년의 일이다.】 

22년(서기 404년) 백제와 연합하여, 고구려 대방계를 침공하였다. 백제 아신제가 서거하였다. 궁월군(弓月君)등 120현민이 귀화하였다. 백제의 왕인(王仁)이 와서 태자를 가르쳤다. 

23년(서기 405년) 왕자전지가 백제 전지제로 즉위하였다. 

25년(서기 407년) 고구려가 다시 백제를 침범하였다. 

【서기 404년에 왜-백제 연합군에 의해 무너진 고구려의 왜국 통치를 광개토왕의 3차 백제 침공으로 대마도의 임나일본부도 부활시키고 5년후인 서기 413년에는 고구려계 왜국왕을 등장시키는데 이가 윤공천황 (允恭天皇; 413-454년)이 된다. 】 

28년(서기 410년) 왕이 서거하였다. 

【응신왕의 서거년에 대한 기록은 없다. 다만 서기 407년의 기록에 왜국태자 우지노(즉 왜찬왕) 왕자가 고구려 국서(國書)를 찢어버렸는데 이때는 그가 응신왕을 대리하여 국정을 집행하고 있으므로서 가능한 것이다. 응신천황은 이미 와병중이었거나 400년 일본열도를 침공한 고구려의 강요로 퇴위되었고, 서기 410년에는 서거한 것으로 추정된다.】 

  위로
17대 왜찬왕(倭讚王)

1년(서기 410년) 혹은 남협기(男狹磯)라고도 하며, 응신왕의 아들이다. 

4년(서기 413년) 윤공왕(允恭王) 이 즉위하였다. 

【윤공왕(允恭王) 1년(서기 413년) 백제의 왕자(근초고제의 후손으로 추정)로 고구려가 왜국을 정벌하고 윤공을 왕으로 세웠다.

4년(서기 416년) 구주(九州)에 안라분국(安羅分國)을 설립하면서, 귀족들을 숙청하였다.
 
14년(서기 426년) 왕이 담로도(淡路島)를 침공하여, 왜국왕의 옥새를 빼앗았다. 이후 백제-왜의 연합군의 공격으로 왜국땅에서 물러나 서기 454년 서거하였다.】 

8년(서기 417년) 왕이 습진언(襲津彦)을 보내어 신라를 정벌하였다. 

10년(서기 419년) 백제에서 목협만치(木협滿致)등이 반란하여 구이신제가 즉위하였다. (삼국사기 즉위 원년 서기 420년이다.) 이에 왕이 목협만치를 소환하였다. 

12년(서기 421년) 송과 교류하였다. 

14년(서기 423년) 왕이 기각숙니와 습진언을 백제로 보내어, 구이신제를 폐위하여 압송하고, 전지제를 다시 세웠다. 

16년(서기 425년) 전지제가 왕에게 누이 신제도원(新濟都媛)을 보내니 비(妃)로 삼았다. 

17년(서기 426년) 윤공왕이 담로도(淡路島)를 침략하고, 옥새를 빼앗아 갔다. 

18년(서기 427년) 1월 왕이 서거하였다. 

18대 이중왕(履中王)

1년(서기 427년) 이름은 거내수(去來穗-이자호)로 전지제의 아들로 왜국왕에 즉위하였다. 

2년(서기 428년) 전지제가 비유제에게 백제의 제위를 양위하고 왜국으로 떠났다. 

3년(서기 429년) 전지제가 왜왕으로 즉위하자, 왜국의 후왕으로 물러났다. 

5년(서기 431년) 왕의 비가 검도태자(劍刀太子)【윤공왕의 태자로 추정된다.】에 의해 살해되었다. 

6년(서기 432년) 왕이 서거하였다. 

19대 인덕왕(仁德王)

1년(서기 429년) 일명 왜진왕(倭珍王)으로 전지제이다. 윤공왕에 의해 왜찬왕이 서거하자, 이를 수습하기 위해 왜국왕으로 즉위하였다. 스스로 왜 백제 신라 임나 모한 변한 (倭百濟新羅任那慕韓弁韓) 등 6 제군사 (諸軍事) 안동장군이라 칭하였다. 

2년(서기 430년) 송(宋)과 교류하였다. 

4년(서기 432년) 이중왕이 서거하자 그의 영지에 반정왕(反正王)이 올랐다. 

【반정왕(反正王) 전지제의 아들로 서기 428년에 이중천황 이자호의 뒤를 이어서 반정왕(反正王; 432-437년)으로 즉위하였다. 반정왕의 이름은 지히노미하쓰와케 (多遲比瑞齒別)라고도 하였다. 】 

5년(서기 433년) 반정왕을 태자로 옹립하였다. 

7년(서기 435년) 신라가 조공을 하지 않자, 장수 죽엽수(竹葉漱)를 파견하였다. 

9년(서기 437년) 장수 전도(田道)를 보내어 신라를 침공하였다. 반정왕이 서거하였다. 

14년(서기 442년) 왜진왕이 서거하였다. 

20대 왜제왕(倭濟王)

1년(서기 442년) 인덕왕의 손자이다. 

8년(서기 449년) 왕이 사자를 송국에 보냈다. 

9년(서기 450년) 왕이 신라를 정벌하는데 임나군(任那軍)와 충돌하였다. 

12년(서기 453년) 백제 비유제가 서거하고 개로제가 즉위하였다. 

13년(서기 454년) 윤공왕(允恭王) 서거하자 아들 안강왕(安康王)이 즉위하였다. 

【안강왕(安康王) 1년(서기 54년) 윤공왕이 서거하자 윤공왕의 태자 목리경(木梨輕)을 죽이고 즉위하였다. 왕이 왜제왕의 아우인 대초향(大草香)을 살해하였다.

4년(서기 457년) 왜제왕이 왕을 안라국왕으로 임명하였다. 왕이 서거하였다.】 

16년(서기 457년) 안강왕이 살해되자 웅략왕(雄略王)이 즉위하였다. 왕이 웅략왕의 사냥에 초대되어 갔다가 웅략왕에 의해 살해되었다. 

【웅략왕(雄略王) 1년(서기 457년) 안강왕이 살해되자 그 형제를 살해하고 안라국왕위에 올랐다. 이어 왜제왕을 살해하고 왜왕으로 즉위하였다.

2년(서기 458년) 왕이 개로제의 딸 적계공주를 살해하였다.

4년(서기 460년) 웅략왕이 퇴위하였다.】 

고구려계 웅략왕에 의해 왜제왕이 살해되고 왜국왕위가 넘어가게 되었다. 그 2년 후 다시 백제 개로제에 의해 청령왕이 왜국왕에 봉해지고 웅략왕을 정벌함으로써 왜국은 다시 백제의 후국이 되었다. 

21대 청령왕(淸寧王)

1년(서기 459년) 이름은 곤지(昆支)로 백제 개로제가 동생 곤지를 보내어 왜국왕에 봉했다. 웅략왕의 태자 성천왕자(星川王子)를 살해하였다. 

3년(서기 461년) 청령왕이 무녕(武寧)이 태어나자 태자로 임명한후 백제로 귀국하였다. 

22대 반풍여왕(飯豊女王)

1년(서기 462년) 개로제의 비로 황태부인(皇太夫人)이다. 왜국여왕에 즉위하였다. 무녕을 태자로 임명하였다. 홍계왕(弘計王)이 스스로 왜국왕에 즉위하였다. 

【홍계왕(弘計王) 1년(서기 462) 왜흥왕(倭興王) 혹은 현종왕(顯宗王)이라고도 하며, 왜제왕의 아들이다. 청령왕이 어린 무녕을 태자로 임명하고 백제로 들어가자, 이에 반발하여 스스로 왜국왕에 올랐다.

3년(서기 464년) 왕이 고구려, 가야와 손잡고, 임나를 침략하자, 백제 개로제가 이에 분개하여 이를 물리치니, 왕이 서거하였다.】 

4년(서기 465년) 홍계왕이 백제군에 의해 전사하자, 인현여왕(仁賢女王)의 칭호로 다시 왜국 여왕으로 등극하였다. 

14년(서기 475년) 고구려가 침략하여 백제 개로제가 전사하고, 문주제가 제위에 올랐다. 이에 여왕이 무녕을 왜왕으로 임명한 후 모도왕(牟都王)과 함께 백제로 귀국하였다. 

23대 안한왕(安閑王)

1년(서기 475년) 일명 왜무왕(倭武王)으로 이름은 사마(斯麻)이다. 백제 무녕왕자로 개로제의 아들이다. 

4년(서기 478년) 백제에서 모반이 일어나 문주제가 살해되고 삼근제가 즉위하였다. (삼국사기 제위 원년 서기 477년이다.) 

5년(서기 479년) 모대왕(牟大王)이 백제 동성제로 즉위하였다. 왜국의 임나(任那) 4현을 백제로 이양하였다. 

8년(서기 482년) 춘일왕녀(春日王女)와 결혼하였다. 

15년(서기 489년) 모도왕(牟都王)이 서거하였다. 

25년(서기 499년) 무열왕(武烈王)이 자립하여 스스로 왜국왕에 즉위하였다. 

【무열왕(武烈王) 1년(서기 499년) 웅략왕의 아들로 스스로 자립하여 왜왕이라 칭하였다. 8년(서기 506년) 왕이 선화왕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28년(서기 502년) 동성제가 서거하자, 왕이 백제 무녕제로 즉위하였다. 제(帝)가 마나왕(麻那王)을 왜왕으로 세웠지만 무열왕에게 패하였다. 

31년(서기 505년) 순타(淳陀)를 왜왕으로 임명하였다. 

24대 선화왕(宣化王)

1년(서기 506년) 일명 사아왕(斯我王)으로 이름은 순타이다. 무녕제의 동생이다. 왕이 왜왕으로 임명을 받고 즉위하였다. 무열왕을 살해하였다. 

2년(서기 507년) 계체왕(繼體王)【응신왕의 5대손으로 이름은 남대변(男大邊) 이다.】이 즉위하였다. 

18년(서기 523년) 무녕제가 서거하고 성제가 제위에 올랐다. 

20년(서기 525년) 흠명왕이 즉위하였다. 

22년(서기 527년) 계체왕이 서거하였다. 

26년(서기 531년) 왕과 왕의 일가가 흠명왕(欽明王)에게 전부 죽음을 당했다. 

이로써 왜국은 무녕제 사후 왜국에 대한 지배권을 잃어버리고 선화왕의 일가가 흠명왕에 의해 몰살당하자 백제 분국으로서 떨어져 나가 독립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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