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7년 7 | - 신라, 신덕왕 죽음, 경명왕 즉위. |
| 918년 2 | - 중국 상인 왕창근이 고경참문을 궁예에게 바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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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씨가 그 뜻을 알아차리고 북쪽 문으로부터 나가서 몰래 장막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왕건이 이들의 요구를 거절하자, 부인 류씨가 손수 갑옷을 들어 왕건에게 입혔다. - 궁예, 변복을 하고 북문으로 도망, 백성들에게 살해됨.
- 마군장군 환선길의 역모. 환선길은 그 아우 향식과 함께 왕을 추대한 공이 있어 왕건이 심복으로써 위임하여 왕궁을 숙위케 하였었다. 그의 아내가 ‘당신의 능력이 남보다 뛰어나 사졸이 복종하고 큰 공이 있는데 정권은 다른 남에게 있으니 부끄럽지 않냐’고 하자 선길이 마음 속으로 그 말을 옳게 여겨 틈을 엿보아 변란을 일으 키려고 하니, 복지겸이 이를 알고 비밀히 왕건에게 아뢰었다. 왕건은 형적이 드러나지 않아 그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느 날 왕건이 전상에 앉아서 학사 두서너 사람과 국정을 의논하고 있는데 선길이 50명의 병사를 이끌고 내정으로 쳐들어왔다. 왕건이 ‘짐이 비록 너희들의 힘으로써 왕이 되었지만 어찌 천명이 아니랴. 천명이 이미 정해졌는데 네가 감히 그럴 수 있느냐’고 호통을 쳤다. 선길이 왕의 말과 얼굴빛이 평시와 같이 침착해 보이자 복병이 있는가 의심하여 달아났는데 숙위하던 군사가 쫓아가서 그를 죽였다. 향식은 뒤에 오다가 일이 실패한 것을 알고 도망가다가 역시 군사가 추격하여 죽였다. (고려사절요) - 왕건, 소판 종간, 내군장군 은부 처형.
- 왕건, 변방의 변란을 우려해 전권 사절들을 파견하라 지시.
- 왕건, 백성에게 3년간 조세와 부역을 면제, 유이민들 돌려보냄.
- 고려의 웅주, 운주 등 10여개 주현이 모반하여 백제에 붙음.
- 마군 대장군 이흔암이 반역을 도모하다가 처단. 그는 궁예 말년에 웅주를 쳐 빼앗았으므로 그대로 그 곳을 지키게 하였는데 왕건이 즉위한 소식을 듣고 몰래 해치려는 마음을 품고 부르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떠나오니 사졸들이 많이 도망해 버렸으므로 웅주가 다시 후백제의 소유가 되어버림. 이흔암의 이웃에 사는 수의형대령 염장이 태조에게 고변. 왕건이 “흔암이 제 마음대로 와서 변경의 땅을 잃었으니 죄는 실로 용서하기 어려우나 나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왕건과 대등한 지위?) 왕을 섬겨 그전부터 정분이 있으니 차마 죽일 수 없으며, 또 반역의 형적이 드러나지 않았으니 저도 변명할 말이 있을 것이라” 하자, 염장이 흔암을 엿보기를 청해 왕건이 은밀히 내인을 보내 감시하던 중, 흔암의 처 환씨가 변소에서 ‘남편의 일이 성취되지 못하면 나는 화를 받을
것이다’라고 중얼거린 것이 발각되어 드디어 하옥됨.
- 청주의 호족 세력은 이해관계에 따라 심한 내분을 겪으면서 왕건 에게 협조한 문식, 명길, 김근겸, 관준, 김언규 등의 세력과 능달, 견금 등의 세력으로 양분되어 있었다. 왕건은 청주인들의 변란에 대비하기 위해 명길, 문식, 능달을 청주에 보내어 동태를 살피고 오게 하였다. 이에 능달은 청주인들이 딴 마음이 없다고 보고하여 청주의 영군장군으로 있었던 견금 등의 재지 세력과 이해를 같이 하고 있었고, 문식과 명길은 청주인들이 모반의 뜻이 있음을 상경종사하고 있었던 청주인 김근겸, 관준, 김언규에게 말하면서 부터 두 세력은 서로 상대방을 모함하고 대립하게 되었다. 왕건은 그들이 서로 모함하는 것을 용서하고 회유, 무마하는 한편 마군장군 홍유와 유금필로 하여금 1500명의 병사를 청주 부근의 鎭州에 보내 변란에 대비토록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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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웅주(공주), 운주(홍성) 등 10여개 주현이 모반하여 백제에 붙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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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견훤의 아버지 아자개 고려의 귀부.
- 순군리 이춘길 등 모반. (복지겸이 고변한 사건임) 이춘길은 청주 인으로 동향의 배금규, 계천(전남 장흥)인 경길 아차, 매곡(충북 회인)인 경종과 모반함. 이에 그 당을 모조리 목베려 하였는데, 청주인 현률이 아뢰기를 경종의 누이는 매곡성주 공직의 처이고 그 성이 매우 견고하고 백제에 인접해 있으므로 공직이 반드시 반할 것이니 회유하라고 하였으나 결국 처형되고 맘. 이에 매곡성주 공직이 견훤에게 투항하였다. - 왕건은 평양을 대도호부로 하고 당제(4촌동생) 왕식렴과 열평을 보내어 평양을 수비케 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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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견훤의 조종으로 청주의 帥 파진찬 진선이 그의 아우 선장과 함께 반역을
꾀하다가 죽음을 당함. 견훤은 파진찬 진선과 선장 형제 등 궁예 계열의 호족들
포섭하면서 왕건 정권의 전복을 원격 조종 하였다.
- 왕건, 처음으로 팔관회를 열고 의봉루에 나가 관람. |
| 919년 1
(2년) |
- 왕건, 송악으로 천도, 삼성 등 관제를 정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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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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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건, 王輪寺, 法王寺 등 10 寺 창건, 3대조를 추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