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비(張飛) 익덕(瀷德) 167~221 탁군(啄郡) 사람
  
▶ 유비(劉備), 관우(關羽)와 의형제를 맺고 평생 의를 지킨 인물이다. 평생동안 싸움터를 전전하며 수많은 공을 세웠는데, 특히 장판교에서 단기필마로 조조(曹操)의 100만 대군을 물리친 것이 유명하다.

여포(呂布), 마초(馬超)등과 좋은 싸움을 벌였고 서촉을 취할 때에는 파군성의 엄안(嚴顔)을 의로 대하여 귀순시키기도 하였으며 한중(漢中)을 취할 때도 와구관에서 장합(張合)을 맞아 지혜롭게 싸워 이를 물리친다.

촉의 오호장군(五虎將軍)의 한사람이다. 후에 관우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과음하다 부하에게 죽었다(55세). 시호는 환후(桓侯)이며 후주(後主) 유선(劉禪)의 장인이다. 벼슬은거기장군에 올랐으며 18자나 되는 장팔사모(丈八蛇矛)를 사용했다.

▶ 출신지 : 탁군, 직위 : 별부사마 - 정로장군 - 거기장군

중국 삼국 시대의 촉의 무장. 자는 익덕(翼德). 하북성 탁군 출신.

유비, 관우와 함께 의형제를 맺어 평생 그 의를 저버리지 않았으며, 후한말 동란기의 수많은 전쟁터에서 절세의 용맹을 떨쳤다.

유비의 익주 공략 때는 주력을 이끌고 큰 공을 세워 파서태수가 되었다. 위의 명장 장합이 장노를 무찌르고 파서로 밀고 들어오자 역전 끝에 이를 격퇴하였다.

유비가 제위에 오르자 거기장군, 사례교위에 임명되었다. 그 후 관우가 죽은 후 관우의 복수를 위하여 오를 치려는 동정에 종군할 준비를 하던 중 부하에게 암살되었다.

관우와 더불어 당대 최고의 용장으로 일컬어지며, 특히 형주에 있던 유비가 조조의 대군에 쫓겨 형세가 아주 급박하게 되었을 때 장판교 위에서 '내가 장익덕이다'하고 일갈하여 위군을 물리쳤다는 이야기가 유명하다.

▶ 자는 익덕(翼德). 대대로 탁군( 郡)에 살아 유비와는 등항이나, 선대의 고향을 따져 연인(燕人) 장익덕으로 통하였다. 유비·관우와 도원결의한 이래로 계속 고난을 같이 하여 용명이 무쌍하였다.

유비나 관우가 독서한 사람으로서 상당한 교양을 쌓은데 비해, 무식하고 졸직(拙直) 단순한 성격과 인간미로 많은 독자의 공명을 받는다. 술이 과하고 부하에게 혹독하게 대하여 실수가 많았으나, 당양 장판(當陽長坂) 싸움이래 용명이 전국에 떨쳤고, 중년 이후는 전술도 제법 원숙하여졌다.

서촉을 취하러 가는 길에는 엄안(嚴顔)을 꾀로 잡아 의로 풀어 주어 귀순시켰고, 한중 싸움에서는 술에 묻힌 체 장합(張 )을 유인하여 크게 이긴다.

관우가 전사한 뒤로는 거의 광적(狂的)일 만큼 복수심에 불탔는데, 군사를 움직이려는 전날밤 수하 장수 손에 싱겁게 목숨을 잃었다. 역시 부하에게 심하게 대했던 보답이었는데, 그의 성미가 어찌나 급했던지 항간 속담에 <장비 군령이냐?>는 문자가 통용되고 있는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아들 장포는 대를 이어 촉한의 장수로 활약하다 죽었도 딸은 후주의 황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