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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도사벽(家徒四壁) ◑ jiā tú sì b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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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家(집 가) 徒(무리 도) 四(넉 사) 壁(벽 벽)
  
▶ "너무 가난하여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음"을 비유한 말. 집안에 네 벽 뿐이라는 뜻으로 집안 형편이 매우 어려움을 이르는 말. 徒:只;壁:墙壁。家里只有四周的墙壁。形容穷得一无所有。 a house empty of all furniture

   
▶ 서한(西漢)시대 임공(臨공)이라는 곳에 탁왕손(卓王孫)이라는 부유한 상인(商人)이 있었는데, 그의 딸 탁문군(卓文君)은 일찍 남편과 사별(死別)하고 혼자 살고 있었다. 그런데 젊고 유능한 사마상여는 이런 탁문군에게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나, 자신의 집안이 너무 가난하여 탁왕손이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이에 사마상여는 연회에 참석한 기회를 이용하여 탁문군을 사모하는 자신의 마음을 그린 연가(戀歌)를 연주하여, 그녀의 관심을 끌고 동시에 자신의 재주를 뽐내고자 하였다. 이미 사마상여의 재능을 알고 있던 탁문군은 직접 그의 출중한 풍도(風度)를 보게되자, 마음이 그에게 기울기 시작했다.

연회가 끝나고 밤이 되었지만, 탁문군의 머릿속에는 낮에 보았던 사마상여의 모습이 남아있어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녀가 밤중에 몰래 집을 빠져 나와 사마상여에게 도망쳐 나오자, 상여는 그녀와 함께 성도(成都)로 말을 달려 돌아 왔다. 그런데 집에 와보니 다만 네 벽만 있을 뿐이었다[家居徒四壁立(가거도사벽립)].

처음에는 탁문군의 아버지인 탁왕손은 거부(巨富)의 딸이 이런 행동을 하게된 것을 몹시 수치스럽게 생각하고, 두문불출하였다. 그러나 딸과 사마상여가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더 이상 볼 수가 없어서 그들의 결혼을 인정하고 많은 재물을 탁문군에게 보내주었다.
  
[출전] 사기(史記)-사마상여열전(司馬相如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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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상여(司馬相如)는 중국 서한(西漢)의 문인(文人)으로 《자허부》,《상림부》등 천고명작을 지어 이름을 떨쳤다. 사마상여는 어릴적부터 독서를 좋아하였고 소년기에 검술을 익혔으며 한경제(漢景帝)시기에 무기상시(武騎常侍)를 지냈다. 


사마상여는 사와 부에 능숙하였지만 한경제는 시사가부(詩詞歌賦)에 그다지 흥미가 없었다. 출세의 길이 보이지 않자 사마상여는 병을 핑계로 관직을 내려놓고 양효왕(梁孝)의 문하가 되었다. 양효왕이 죽자 다시 촉(蜀)으로 돌아왔다. 그가 관직을 잃고 가난하게 지낸다는 소문을 들은 사마상여의 옛친구이자 임공령(臨筇令) 왕길(王吉)이 서신을 보내 자신이 보살필테니 임위(臨緯)에 오라고 초대하였다. 


서신을 받은 사마상여는 곧바로 임공으로 떠났다. 임공현은 부유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그곳에는 유명한 탁왕손(卓王孫)과 정정(程鄭)이라는 두 상인(商人)이 있었다. 둘은 현지사 왕길의 귀빈 사마상여가 왔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들을 초대하였다. 


그런데 연회가 시작된지 한참이 지났지만 사마상여는 나타나지 않았다. 왕길이 가마를 타고 직접 찾아가 거듭 청해서야 사마상여는 마지못해 따라 나섰다. 


사마상여가 자리에 앉으니 그의 풍채는 좌중을 압도했다. 분위기가 한껏 무르익었을 무렵 왕길이 일어나 이렇게 말했다."사마장경(司馬長卿)께서 거문고를 잘 타신다니 한곡 듣고습니다." 극구 사양하던 사마상여도 분위기에 취해 거문고를 타기 시작했다. 이때 탁왕손의 딸 탁문군(卓文君)이 창밖에서 거문고 연주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탁문군은 얼굴이 아름답고 음률을 좋아하였으며 17세 나이에 과부가 되어 친정에 와있던 터였다. 수려한 용모의 남자가 연주하는 거문고 소리에 탁문군은 가슴이 뛰었다. 이를 눈치 챈 사마상여 역시 자신의 연주를 듣고 있던 탁문군에게 연민의 정을 느꼈다. 사마상여는 "봉구황"을 연주하며 문군에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였다. 연회가 끝나자 사마상여는 탁문군의 시종을 찾아 자기의 절절한 사모의 정을 전하였고 문군은 그 사랑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부자집 딸이었던 탁문군과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사마상여의 사랑은 쉽게 이루어지지 못했다. 어느날 깊은 밤 은밀히 만난 두 사람은 도주하여 사마상여의 고향 성도(成都)에 가기로 마음 먹었다. 


탁문군과 함께 달려서 성도로 돌아오니 거주하는 집은 너무 가난하여 "가도사벽"이었다. (집안에는 아무것도 없이 사방이 벽만이 서있었다.) 탁문군은 극도로 가난한 환경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두 사람은 임공에 다시 돌아가 술을 파는 주막을 열어 생활고를 벗어보려했다. 이 소문을 들은 탁문군의 부친 탁왕손은 진노하다가 결국 이들의 사랑을 허락하고 훗날 많은 재산을 남겨주었다. 그 상속으로 부유해진 사마상여는 한무제의 총애를 받으면서 궁정문인으로 재능을 마음껏 펼치면서 수많은 명작을 남겼다. 


"가도사벽"이란 '집안에 네 벽 뿐'이라는 뜻으로 매우 어려운 집안 형편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 汉朝的司马相如是当时一个有名的才子,不过他的家境很不好。

  有一天,大财主卓王孙邀请他到家里吃饭,顺便让司马相如表演他的琴艺。卓王孙的女儿那时候刚死了丈夫,名叫文君,对音乐很有兴趣。当司马相如在宴会上弹琴时,知道文君也在场,就用音乐表达他的爱意。宴会结束后,司马相如贿赂卓文君身边的人,希望他们能够帮忙转达他的感情。结果,当天晚上,卓文君就离家出走到司马相如住的旅舍,两个人一起回到成都。

  可是回到司马相如的家,屋子里除了四面墙壁外,根本没有任何东西。

  他们生活得十分艰困,靠着朋友的帮忙,才在卓王孙家的附近开了一间酒店。没多久,邻居们都晓得,卓王孙的女儿居然在街上卖酒!卓王孙为了面子,不得已只好送给卓文君一百名仆人和一百两黄金,让他们购买田产、房屋。

[출전] 东汉 班固《汉书 司马相如传》:“文君夜亡奔相如,相如与驰归成都,家居徒四壁立。”

[동의어] 일빈여세(一贫如洗), 가빈여세(家贫如洗), 거도사벽(居徒四壁), 가도벽립(家徒壁立) 상여지빈(相如之貧), 일무소유(一無所有 아무 것도 가지지 아니함) 

[반의어] 풍의족식(丰衣足食), 가급인족(家给人足), 요전만관(腰缠万贯), 가재만관(家財萬貫 집안에 재물이 넘쳐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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