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총(滿寵) 백녕(伯寧) 170~242 산양(山陽) 창업(昌邑) 사람
  
▶ 벼슬은 태위(太尉)에 올랐으며 시호는 경후로 유엽의 추거로 조조를 섬기게 되었다. 번성이 포위되었을 때 조인이 번성을 버리자고 하지만 끝까지 지키도록 진언하여 관우군을 격퇴시키고 승리를 누렸다. 촉의 북벌 때 호응한 오군의 동태를 봉쇄하여 쾌승을 거두었다 외교에 능하여 중요한 사신으로 다니며 많은 공을 세웠다.

▶ 출신지 : 산양군 창읍현, 직위 : 독우 - 종사 - 양무장군 - 태위

18세 때 군(郡)의 독우가 되지만 관직을 버리고 귀향, 조조가 연주를 평정하자 부름을 받고 종사가 된다.

원소와의 싸움과 형주 공략에서 공을 세워 여남태수와 분위장군을 겸직, 그후 관우가 조인의 번성을 포위했을 때 장마로 성벽이 물에 잠기자, 조인은 성에서 탈출하는 것을 고려했다. 이에 만총은 '물이 빠지기를 기다려야 한다.'고 진언하면서 농성을 계속해 지원군 서황과 함께 관우를 격파했다. 문제가 왕에 오르자 양무장군이 되고, 오의 손권 침략을 몇 번이나 격퇴. 234년 손권이 합비의 신성을 공격했을 때는 수십 명의 용사를 모집해 손권 진지를 야습하고 성곽 공격 무기를 불태워 적을 퇴각시킨다.

238년에 노령으로 소환되어 태위로 승진하고, 242년에 사망하는데 재산에 무관심했기 때문에 남은 재산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 조조 막하의 모사. 자는 백녕(伯寧). 산양 창읍(山陽昌邑) 사람으로 유엽(劉曄)의 천거로 그의 사람이 되었다. 구변좋게 달래어 서황(徐晃)을 끌어 들이고, 계속 조조를 위하여 진력하던 중, 관우와의 양양성(襄陽城) 싸움에서 정세를잘 파악하여 조인(曹仁)을 도와 승전으로 이끌었다. 뒤에도 여러 번전공을 세워 벼슬이 태위(太尉)에 이르렀고, 죽어 경후(景侯)의 시호를 받았다.


소설 三國演義
第001 - 019回 桃園結義, 除董卓, 三讓徐州, 斬呂布
第020 - 038回 煮酒論英雄, 千里走單騎, 滅袁紹, 三顧茅廬
第039 - 059回 長板坡, 赤壁之戰, 三氣周瑜, 戰馬超
第060 - 080回 入西川, 逍遙津, 取漢中, 失荊州, 魏蜀稱帝
第081 - 105回 彝陵之戰, 七擒孟獲, 六出祁山,
第106 - 120回 九伐中原, 破西蜀, 三分歸一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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